코로나19로 휴교해도 대학원생은 출근 요구 논란…“교수 갑질 끊어야”

  • 뉴시스
  • 입력 2020년 2월 26일 16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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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더라도 출근하는 걸 당연시하는 문화"
대학원생 89% 하루 8시간 일해…15시간 넘는 곳도
교수 지시에 따른 잡일·졸업 무관한 연구 강요 만연
"정부와 대학, 대학원생 건강권 보호 조치 마련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휴교령을 내린 대학에서 일부 교수들이 정상 출근을 강요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에 자신의 건강권이 종속된 대학원 내 ‘갑질’ 문화가 다시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26일 대학가에 따르면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대학원생노조)은 최근 성명을 내고 “포스텍에서 총장이 휴교를 결정했음에도 일부 교수들이 평시와 같이 연구실 출근을 지시했다고 한다”며 “대학원생은 실험 도구가 아니다. 연구 수행자의 긴장감에 의존하는 안전은 결코 성립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포스텍에서 실험실을 운영하는 일부 교수들이 휴교 기간 중에도 대학원생들에게 정상 출근을 강요했다는 주장이 학내 게시판을 통해 제기됐다.(뉴시스 2월24일자 보도 ‘포스텍 교수들, 휴교령에도 대학원생 출근 강요’ 참조) 포스텍은 지난 23일 외부 기관 직원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집중 방역과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24~25일 휴교를 결정했다.

포스텍 김무환 총장은 지난 24일 대학 구성원에 메세지를 보내 “건물에 있는 실험실도 출입을 삼가하되 연구와 관련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 한해 지도교수의 확인과 책임 아래 출입이 가능하다”고 알렸다. 김 총장은 “다소 불편할 수 있겠으나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고 구성원과 구성원 가족은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조처인 만큼 교수들과 직원, 연구원, 대학원생들의 이해와 협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포스텍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한 한 연구원(20대 후반, 여)은 26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특정 학과에서 실제로 그런 일(출근 강요)이 벌어졌다고 전해 들었다”며 “저 또한 재학 시절 지도교수가 동료에게 ‘나가라’며 고함을 치거나, 아파서 나오지 않으면 ‘꾀병 아니냐, 나오기 싫은 건 아니냐’는 말을 하는 걸 심심찮게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평소에도 주말 없이 무슨 일이 있든 출근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라며 “제 실험실 말고도 다른 실험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지도교수는 제 모든 것을 쥐고 있다. 취업 추천서 등이 필요할 때 입김을 넣을까 두려움을 느낀다”며 “폐쇄적이라 고발을 해도 쉽게 신원이 특정돼 고발조차 꺼린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것은 전국 대학원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구조적 문제다. 전국대학원생노조도 성명에서 “대학원생은 이해와 협조를 따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며 “대학원생일 심리적, 신체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내몰면서 실험 결과를 뽑아내려 하는 교수들의 의식과 이를 정당화하는 위계구조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지난해 10월 이공계 대학원생 총 13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공계 대학원생 처우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를 보면, 89%가 하루 연구실에서 8시간 이상 머문다. 10시간 이상~12시간 미만이 32%(427명)로 가장 많았다. 하루 ‘15시간 이상’이라 답한 대학원생도 79명(6%) 있었다.

원인 중 하나는 지도교수의 암묵적 또는 직접적 지시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잡무 내지는 연구다. 실험실 잡무 또는 자신의 졸업 연구와 거리가 먼 연구과제에 참여한다고 답한 대학원생이 32%(429명)로 조사됐다. ‘연구실 관행’이라 답한 대학원생도 343명(26%)으로 나타났다.

대학원생들과 전문가들은 대학원생을 포함한 학내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데 정부나 교육 당국, 대학이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불가피한 사유가 있어도 극히 예외로 두어야 하며, 위계를 이용해 이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인 제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원생노조는 성명에서 “학생과 교수라는 고정되고 단일한 정체성을 넘어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와 관리자의 관계로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며 “대학과 정부는 코로나19 예방 사각지대에 놓인 구성원들의 보호 조치를 강력히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황승식 교수는 “휴교령이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적절한지와는 별개로 포스텍 교수들의 행동은 전형적인 갑질”이라며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는 안전이 우선이므로, 위험에 처하지 않게 이동을 자제시키는 것이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본, 미국 등 대학들은 재난이나 테러에 대비한 대비계획이 마련돼 있다”며 “정 실험실을 떠나면 안되는 상황이라면 당번제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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