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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 일왕, 재군비 주장했었다…반성도 표하고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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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 일왕, 재군비 주장했었다…반성도 표하고자 해”

뉴스1입력 2019-08-19 13:14수정 2019-08-1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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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昭和) 시대 히로히토 당시 일왕(왼쪽)와 다지마 마치지 궁내청 장관. (출처=NHK 갈무리) (© 뉴스1

쇼와(昭和) 시대를 이끈 히로히토(裕仁) 당시 일왕이 전쟁(태평양 전쟁)과 관련해 국민에게 깊은 회한과 반성의 마음을 표하고 싶어했지만 반대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재군비(再軍備·없앴던 군사시설을 다시 갖추는 것)와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현재 개헌을 통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보도여서 눈길을 끈다.

이는 18일 NHK가 민간 출신으로선 초대 궁내청 장관이었던 다지마 마치지(田島道治)가 당시 히로히토 일왕과의 대화를 꼼꼼히 기록한 ‘배알기’(拜謁記)를 공개, 보도한 것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다지마 마치지는 쇼와 23년(1948년)부터 5년 반 동안 궁내청 장관을 맡았다.


다지마 당시 장관은 히로히토 당시 일왕과 총 600회, 300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눴고 이를 수첩과 노트 등 모두 18권에 상세히 기록했다. 이 기록이 배알기. 여기서 배알(?謁·はいえつ)이란 일왕을 ‘만난다’(알현한다)는 뜻의 단어다. NHK는 유족으로부터 이를 제공받아 근현대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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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히로히토 당시 일왕은 다지마 장관에게 패전에 이른 과정 등을 여러 차례 회고했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 발효된 지 얼마 안 된 쇼와 27년(1952년) 1월과 2월 다지마 장관에게 “나는 아무래도 반성이란 글자를 (독립 관련 발표서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반성이라는 것은 내게도 많다고 할 수 있다”는 등 반성의 말을 하겠다고 강하게 고집했다고 NHK는 전했다. 하지만 그 해 5월 독립을 축하하는 헌법시행 5주년 기념식에서 히로히토 당시 일왕은 반성이란 단어는 전혀 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퇴위를 사실상 거부하는 언급을 했다.

NHK는 히로히토 당시 일왕은 헌법 개정과 관련해선 부정적이었지만 군비(軍備)에 대해서만큼은 공명정대하고 당당히 개정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그는 같은 해 5월 “재군비에 의해 군벌이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절대 싫지만 침략을 받을 위협이 있는 이상 방위를 위해 새로운 군비가 없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당시 총리에게 직접 전하려고 했다는 걸 다지마 장관이 간파했다고 한다.

히로히토 당시 일왕은 그 해 3월에도 “경찰도 의사도 병원도 없는 세상이 이상적이지만 병이 있는 이상은 의사도 필요하고 깡패가 있는 이상 경찰도 필요하다. 침략자가 없는 세상이 되면 군사력이 없어도 되겠지만 침략자가 인간 사회에 있는 이상 군대는 필요하다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맞다(도리이다)”라고도 말했다. 다지마 장관은 이에 대해 “일본은 최근의 전쟁에서 침략자로 불렸다. 헌법상 그런 말(재군비)은 할 수 없다. 그것은 금구(禁句·금지된 말)다”라고 설득했다고 NHK는 전했다.

히로히토 당시 일왕은 이듬해엔 우치나(오키나와 말로 오키나와를 뜻함) 미군 기지 반대 투쟁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일본의 군비가 아니면 미국이 진주하고 지켜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서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고 NHK는 전햇다.

왕실 전문가인 후루카와 다카히사(古川隆久) 닛폰(日本)대학 교수는 “배알기 분석에서 히로히토 당시 일왕이 개헌이나 재군비를 언급하고 있었던 것은 새로운 발견이지만, 개헌이라고 해도 자위대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을 헌법상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그는 구군(?軍)에 대해선 상당히 비판적이며 (전쟁 전과) 같은 군대를 재현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억제해 둬야 한다”고 언급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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