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대가’ 송강호 “임대호-박두만-송우석 날 있게 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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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배우로서의 삶이 행복하다”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송강호는 “배우로서의 삶이 행복하다”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1919년 10월,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의리적 구토’가 한국영화의 출발을 알렸다. 그로부터 100년.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를 채웠다. 배우 전도연(46)과 송강호(52). 스포츠동아가 창간 11주년 및 2019년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100인의 영화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두 사람은 ‘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남녀 배우’로 꼽혔다. 이달 중순 두 사람을 각각 만났다.》
  
인물 해석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캐릭터 연기의 대가’, 그리고 ‘인기와 신뢰, 연기력’으로 마침내 ‘아티스트로서의 배우’의 위상을 차지한 인물. 100인의 영화 전문가 가운데 49명이 송강호를 ‘한국 영화 100년 최고의 남자 배우’로 꼽으며 내놓은 평가들이다. 최근 신작 ‘나랏말싸미’ 촬영을 끝낸 송강호는 “영광스러우면서도 훌륭한 선배님들이 많아 송구스럽다”고 했다.

송강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친구들이 내 이야기 묘사나 표현력을 재미있어” 했기 때문이다. 경남 김해 출신인 그에게 대학(경상대)은 그를 배우로 키워낸 첫 무대였다. 연극을 하면서 사물놀이와 마당극을 접한 그는 군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부산의 연극무대에 뛰어들었다. 이어 서울 대학로 극단 연우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연출가 이상우를 비롯해 연우무대 사람들, 또 다른 활동 무대로 삼았던 극단 차이무 동료들이 ‘송강호의 젊은 시절’을 보듬어줬다.

―연극으로 세상에 눈을 뜬 건가요.

“연우무대는 나의 이상향이었습니다. 연우무대를 흠모해 1991년 상경했습니다. 창작극이 아니더라도 관객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분명히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걸 가장 예술적이면서도 기술적으로 표현하는 곳이 연우무대였습니다.”

―20대 때는 어땠나요.

“너무 힘들었지요. 젊으니까 어떤 고달픔도 이겨내고 돌파했지만 두어 번 ‘내 길이 아닌가’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배우든 비슷할 겁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고요.”

―좌절은 20대로 끝났나요.


“이후로도 몇 번 있었습니다. 처음엔 좋아서 시작했지만 ‘좋지만은 않구나, 참 힘들구나, 일반인은 모르는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구나’ 했습니다. 나와 주변의 노고가 담긴 영화가 아쉬운 성적에 머물렀을 때 무너지는 느낌도 받습니다. 나름 좋은 영화, 좋은 연기를 보여주려 애쓰는데 그걸 다른 잣대로 평가받을 때면 많이 아쉬워요.”

송강호는 ‘괴물’ 같은 1000만 관객 흥행작을 비롯해 출연작 33편의 대부분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부터 최근작 ‘마약왕’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의 질적 성장은 물론이고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의 확장을 이끈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인의 대표적 정서와 감성을 표현하는 배우”라는 평가가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송강호는 동시대 배우’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어떤 스타일이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이야기나 인물이 관객에게 적확하게 다가가도록 하는 게 좋은 연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시대적 흐름에 맞춘 스타일에서 벗어나 연기의 틀을 깨뜨린 어떤 희열 같은 걸 안겨준 게 아닐까요. 나를 통해 관객이 ‘영화에서도 저렇게 연기할 수 있구나’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내 연기가 뛰어나기 때문은 절대 아닐 겁니다.”

―‘송강호의 오늘’을 있게 한 세 캐릭터를 꼽는다면요.

“하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캐릭터와 영화가 전부 사랑스럽고 좋은데…. (한동안 머뭇거린 뒤) 이 순간 떠올리자면 ‘반칙왕’의 임대호와 ‘살인의 추억’ 박두만, ‘변호인’의 송우석이 아닐까요. 임대호는 나와 많이 닮았습니다. 엄청난 고통의 순간을 겪고 난 뒤 꼭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토록 원한 레슬러의 꿈을 이룹니다. 개인적으론 첫 단독 주연작의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박두만은 대한민국 영화 팬들이 가장 사랑해준 캐릭터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송우석이란 인물을 연기할 수 있어서 배우로서 행복했습니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내가 포함됐는지 몰랐습니다. 조심스럽네요. 여전히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내가 직접적으로 체감하지 못한 대신 제작자나 투자사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영화 ‘밀정’ 땐 다른 작품에 허용된 촬영 공간을 우리는 쓸 수 없었습니다. 이유가 있었어요.”

―송강호에게 연기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누구나 갖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감춰진 얼굴을 발견하게 해주는 게 연기이고 배우의 역할 아닐까요. 잊어버린 얼굴을 찾으려 관객은 극장에 가고, 그렇게 함께 눈물을 흘리고 웃고 때론 감동도 받으니까요.”

윤여수 tadada@donga.com·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송강호#한국영화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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