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70〉우리 글자 이름 ‘디귿’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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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ㄷ’으로 끝나는 명사를 생각해 보자. 금방 떠오르는가? ㄷ 받침을 가진 단어는 많다. ‘곧다, 굳다, 걷다, 닫다, 묻다, 곧(부사), 숟가락’ 등 언뜻 떠올려도 수십 가지는 된다. 하지만 ‘ㄷ’으로 끝나는 명사는 거의 없다. 우리말의 역사 때문이다. 옛말에는 ‘ㄷ’으로 끝나는 명사가 많았다. 하지만 모두 ‘ㅅ’으로 끝나는 말로 변해 버렸다.

이즈음에서 반례를 떠올려야 한다. 현대국어에도 분명 ‘ㄷ’으로 적어야 하는 명사가 있다. ‘디귿, 쌍디귿’이다. 질문이 이어져야 한다. ‘ㄷ’으로 끝나는 명사는 모두 ‘ㅅ’으로 바뀌었는데 이들에만 ‘ㄷ’이 남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디귿’에 ‘ㄷ’이 남았는지부터 확인해 보자.

● 디귿: 디귿이[디그시], 디귿을[디그슬], 디귿으로[디그스로], 디귿에[디그세]

아무도 ‘디귿이, 디귿을’을 ‘[디그디(×)], [디그들(×)]’이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꽃’을 ‘꽃’이라 적는 이유와 비교해 보자.

● 꽃: 꽃을[꼬츨], 꽃으로[꼬츠로], 꽃이[꼬치], 꽃에[꼬체]

‘꽃’에 ‘ㅊ’을 적는 것은 모음 조사를 연결하였을 때 나타나는 ‘ㅊ’ 때문이다. 우리말 표기의 대표적인 원리다. 그런데 ‘디귿’에 모음조사를 연결한 발음은 이런 원리에 어긋난다. ‘디귿이[디그시], 디귿을[디그슬]’의 발음에서는 ‘ㅅ’만 확인될 뿐이다.

여기서 앞서 우리가 했던 말을 환기해 보자. 옛말에 ‘ㄷ’으로 끝나는 명사들은 모두 ‘ㅅ’으로 끝나는 말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디귿’이라는 말 역시 이러한 변화의 예외가 아니다. ‘디그시’에서 발음 ‘ㅅ’은 이 단어가 일반적 언어 변화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묘한 안도감이 든다. 어떤 단어만이 특정 언어 변화를 피했다는 점은 오히려 기이한 일이다. 우리의 발음은 ‘디귿’이나 ‘쌍디귿’ 역시 언어 변화에서 예외적인 것이 아님을 말해 주질 않는가?

하지만 뒤따라오는 불안감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의 발음은 언젠가 ‘디귿’을 ‘디긋(×)’으로 적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러지 말아야 한다. 불안감을 제대로 없애려면 좀 더 넓게 접근해야 한다. ‘디귿’은 글자의 이름이다. 훈민정음의 글자 이름은 1527년 ‘훈몽자회’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다. 우리의 글자 이름에 든 원리는 우리가 ‘디귿’을 ‘디귿’으로 적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디귿’이라는 표기처럼, 우리 문자의 모든 자음 이름 안에는 첫소리, 끝소리에 해당 문자가 들었다. 해당 자음을 첫소리와 끝소리에 모두 적을 수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사실 첫소리와 끝소리가 같다는 이런 인식이 훈민정음 자음의 근본정신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반영된 이런 현대 언어학적 음소 인식은 현대의 언어학자들을 놀라게 하는 과학성이기도 하다.

‘디귿’이라는 이름에는 처음 우리 문자를 창제한 근본 원리가 들었다. 언어 변화로 발음이 달라진 지금에도 이름 짓던 당시의 근본 원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이름이기에 우리는 ‘디귿’을 여전히 ‘디귿’이라고 적는 것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디귿#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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