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p Of Life, 나의 월드컵] ⑩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 “한 사람이 두 사람 몫 한다면…”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6월 1일 05시 30분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 스포츠동아DB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 스포츠동아DB
수비수로 이탈리아월드컵 3경기 풀타임 출전


늦은 현지 입성…시차적응&컨디션 조절 실패

비디오 한 번 못보고 강팀 상대…“정보 제로”

소방수로 지휘한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예선

“해외파·국내파 편 가르기?…구분 의미 없어”

“임기 짧은 국가대표 감독으로는 한계 많아”

‘신태용호’ 성공하려면?…“수비·밸런스 관건”


전북현대 최강희(59) 감독은 K리그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선수시절에는 늦게 핀 꽃이었다. 1979년 우신고를 졸업하면서 대학 진학 대신 실업팀(한일은행) 입단을 택했다. 남들보다 한참 이른 나이에 3년의 군 복무(육군축구단)도 마치고 1983년 프로에 뛰어들었다. 순탄치 않았던 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 27세 때인 1986년 수비수 최초로 프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며 전성기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생애 처음 태극마크도 달았다. 1988서울올림픽, 1990이탈리아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지칠 줄 몰랐고, 누구보다 영리했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만족을 모르고, 치밀하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뒤로 전북이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강 클럽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인지 모른다. 그러나 켜켜이 세월이 쌓이는 동안,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는 동안 그의 가슴 속에도 분명 묵은 찌꺼기들이 자라났다. 3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었지만 패배의 쓰라림만 맛본 이탈리아월드컵 조별리그도 그 중 하나다. 긴급 출동한 소방수나 다름없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의 국가대표팀 사령탑 생활도 그렇다. K리그 최고의 명장이 된 그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지난 이야기들을 1인칭 화법으로 재구성한다.

[90 이탈리아 월드컵] 몸풀기 한국 대표선수들은 7일 낮 달리기 등으로 여독을 풀었다. 스포츠동아DB
[90 이탈리아 월드컵] 몸풀기 한국 대표선수들은 7일 낮 달리기 등으로 여독을 풀었다. 스포츠동아DB

● 혹독한 참패, 값비싼 교훈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당한 참패는 아직도 한으로 남아있다. 아쉬움만 가득하다. 아시아 1차 예선부터 최종예선까지 월등하게 잘 싸웠고, 국민들의 기대도 컸다. 멤버도 1986년(멕시코월드컵)보다 어찌 보면 훨씬 나았다. 경험도 있었고, 선수들 대부분이 전성기였다. 또 홍명보, 황선홍이 신인으로 가세해 신구의 조화도 좋았다.

잘못된 원인 중 첫째는 대회 6일 전에 이탈리아에 들어간 것이다. 이회택 감독, 이차만 코치, 허정무 트레이너가 당시 코칭스태프였다. 허정무 트레이너는 유럽에 있어봐서(네덜란드리그에서 뛰어봐서) 보름 전 독일에 들어가 베이스캠프를 차린 뒤 이탈리아로 넘어가자고 건의했다. 그런데 그 말이 안 먹혔다.

나중에 사석에서 감독님께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최종예선 때 사우디아라비아가 23일 전에 싱가포르(개최장소)에 들어왔다. 우리한테 0-2로 완패를 당했는데, (선수들이) 뛰지를 못했다. 더운 지방에 너무 일찍 들어와서 퍼진 것이다. 그게(대회장소 조기 입성이) 자기(이회택 감독)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보름 전, 최하 열흘 전에는 (유럽에) 들어가 시차적응을 마치고 컨디션을 맞춰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벨기에·스페인의 맹공에 쩔쩔 맨 1·2차전 때는) 수비하는 데 애를 먹은 게 아니다. 공을 주려고(패스하려고) 하니까 모두 서 있더라. 시차적응이 안 돼 움직이질 못했다. 컨디션이 최상일 때 만나도 힘든 팀들을 맞아 다 서 있었다. 힘 한 번 못써보고 그냥 졌다. 우루과이전(3차전) 때 뒤늦게 시차적응이 이뤄지면서 컨디션이 올라왔다. 몸이 제일 좋았다. 할 만하니까 집에 돌아가게 생겼다. 얼마나 비극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대한축구협회에 국제부도 있고, 코칭스태프도 있는데 왜 그런 스케줄로 월드컵을 치렀는지…. 그 경험 때문에 지도자가 된 뒤에는 ‘두바이는 5시간이다, 태국은 2시간이다’라는 식으로 꼭 시차적응을 염두에 두게 됐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니까 (시차적응을 위한) 시간을 꼭 벌어줘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상대에 대한 정보가 제로였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상대 선수와 팀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경기를 하는데, 그 때는 비디오 한 번 못보고 경기에 나갔다. 또 첫 경기 이틀 전엔가 체력훈련을 힘들게 하는 바람에 선수들이 모두 지쳤다. 물론 세계적 강팀들을 상대했지만, 정상적이었다면 우리도 그렇게 무기력하게 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벨기에전 경기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벨기에전 경기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안 맞는 옷을 입었던 것일까?


(2011년 12월)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을 생각도 없었고, 더더욱 브라질(월드컵 본선)에는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쿠웨이트(3차 예선 최종전)를 잡고 (최종예선 1·2차전에서) 카타르와 레바논도 꺾어 3연승을 거두고 나니 ‘이러다 진짜 본선까지 가야 하나’하고 덜컥 겁이 나더라.(웃음)

그러다 기성용 사건(SNS 항명파동)이 터지고, 해외파·국내파 얘기(분열)가 나오더라. 사실 해외파와 국내파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그런 일(편 가르기)도 없었다. 걔네(해외파)도 K리그 출신이니까. 다만 해외파이다 보니 자연히 (서로) 관심사가 통할 뿐이다. 그래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언론에서 계속 얘기가 나왔다.

대통령에게도 레임덕이 있듯이 내가 본선까지는 갈 감독이 아니니까 선수들끼리 ‘죽기 살기로 충성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는 몇 게임 동안 있었다. 또 나는 K리그 선수들 위주로 ‘어떻게든 본선까지는 보내자’는 생각뿐이었고…. 어쨌든 가까스로 본선에 오르고 나는 소속팀으로 돌아왔는데, 그러다보니 홍명보 감독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표팀을 맡았다.

본선까지 지휘하지 못한 데 대해선 후회가 전혀 없다. 나중에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대표팀 감독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나는 선수들과 몸으로 부대끼고 머리를 맞대면서 팀을 만들어가는 지도자다. 반면 대표팀은 선수가 합류하면 오늘은 회복훈련, 내일은 전술훈련, 그 다음날에는 몸 풀고 세트피스훈련을 한 다음 경기를 치르고 상암(경기장)에서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그러고 나면 대표팀 감독은 (상당기간) 운동장에서 할 일이 없다. 그런 방식이 나한테는 안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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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감독으로 성공하려면?


지금 신태용 감독도 소방수인데, 사실 누가 그런 상황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겠나. 2년 전 ACL에서 우승했을 때 정몽규 회장님께도 그런 얘기를 했다. ‘요즘 젊은 감독들은 열심히 공부한다. 열정도 있다. 예선부터 팀을 만들고 선수를 발굴할 수 있게 대표팀 감독 임기를 4년으로 해달라. 어떻게 매번 예선 따로, 본선 따로 감독을 임명하느냐.’ 그러다보니(대표팀 감독 임기가 짧으면) 연속성도 없을뿐더러, 성적을 내기 위해 해외에서 소속팀 경기를 뛰고 합류한 특정선수를 친선경기인데도 90분을 다 뛰게 하고 돌려보내는 것이다.

독일 뢰브 감독은 선수(국가대표)로 뛴 적이 없는데도 10년 넘게 대표팀 감독을 하고 있지 않느냐.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선수를 발굴하고 자기 팀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대표팀 감독에게 보장해줘야 한다. 우리는 팬들도, 언론도, (대한축구협회) 스폰서도 못 기다려주니까 감독이 자기 팀을 만들 수 없다. 친선경기인데도 이겨야 하고 내용도 좋아야 하니까 기성용도, 이청용도, 박지성도, 이영표도 다 데려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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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태용호’에 필요한 것은?


현대축구에선 공이 끊기면(공격하다 볼을 빼앗기면) 이동국(스트라이커)부터 수비를 해야 한다. 1994년 미국월드컵 때 브라질은 과거보다 적은 골을 넣고도 팀 밸런스가 좋아 우승했다. 그 때 페레이라 감독은 “이제 브라질은 펠레라도 수비에 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수비는 최종 4명 또는 5명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월드컵 같은 대회에서 약팀이라면 조직력이나 밸런스로 승부해야 한다.

신 감독도 이를테면 수비라인을 어디에 놓을 지부터 이미 계산하고 있을 테니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는 없었지만 본선(러시아월드컵)까지는 얼마간 준비할 시간이 있어서 충분히 조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손흥민이 “12명이 뛰는 것처럼 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아니면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한다면 지금 걱정하는 정도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해도 어차피 책임은 감독이 져야 하는 것이니까 소신대로 하기를 바란다.

● 최강희 감독은?

▲ 생년월일=1959년 4월 12일(경기도 양평 출생)

▲ 출신교=대광중~우신고

▲ 프로선수 경력=포항(1983년), 울산현대(1984~1992년)

▲ 프로통산 성적=205경기·10골·22도움

▲ 국가대표 경력=A매치 30경기(1988서울올림픽, 1990이탈리아월드컵 등)

▲ 지도자 경력=수원삼성 트레이너(1995~1997년) 및 코치(1998~2001년), 전북현대 감독(2005년 7월~2011년 12월·2013년 6월~현재), 국가대표팀 코치(2003~2004년) 및 감독(2011년 12월~2013년 6월)

▲ 주요 수상 경력=K리그 MVP 1회(1986년) 및 베스트11 4회(1985·1986·1988·1991년), K리그 올해의 감독상 5회(2009·2011·2014·2015·2017년), AFC 올해의 감독상 1회(2016년)

전주 |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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