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체성-민족주의 강조… 獨의회에 어른거리는 ‘히틀러 그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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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당 AfD 의회 입성 8개월

“독일 헌법 1조 인간 존엄의 원칙을 위배한 질문으로 히틀러 정당에서 볼 수 있었던 일이다.”

지난달 13일 독일 의회 윤리위에서 좌파당 디트마어 바르치 의원은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를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날 윤리위에는 이례적으로 가톨릭 주교단도 출석해 “AfD가 마치 가치 있는 삶과 가치 없는 삶이 따로 있는 것처럼 구분 짓는 질문을 했는데 이는 가톨릭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모든 장애인은 평등하다”고 비판했다.

독일 국회가 발칵 뒤집힌 건 AfD가 정부에 장애인과 관련된 질의서를 보내며 이민 배경에 따른 장애인 수뿐 아니라 장애아를 낳은 부모의 통계 그리고 근친 간 결혼에 따른 장애인 수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의 장애의 근원을 찾는 질문인 셈. 인종주의에 기초한 우성 유전자론에 따라 장애인과 정신질환자 30만 명을 독가스와 약물 투여 등으로 살해한 히틀러 정책을 연상케 한다. 윤리위원장과 정부, 주교단은 한목소리로 “비인간적인 충격적인 질문”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9월 독일 총선에서 의회 입성에 성공한 AfD가 독일 정치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극우정당이 의회 진입에 성공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92석을 차지해 3당인 AfD는 1, 2당인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 대연정을 구성하면서 제1야당이 됐다. 예산위원장과 법사위원장 등 주요 위원장 자리도 차지했다.

독일 의회에선 국가 정체성과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AfD와 도를 넘지 못하게 막는 다른 정당들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AfD는 지난달 27일 ‘혐오발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독일 형법 130조에서는 인종 민족 종교 등 특정 그룹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할 경우 최대 3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본인도 혐오발언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적 있는 AfD의 옌스 마이어 의원은 “독일인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개정안을 제출했다. 다른 정당들은 “이 법안 취지가 소수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독일인이 보호받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굳이 강조하는 건 오히려 이 법안이 논란이 되도록 해서 폐지를 유도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AfD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내년에 선발할 6만 명의 법원 배심원단에 지지자들이 대거 참여하도록 신청을 독려하고 있다. AfD가 사법부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이에 독일 주류 언론은 연일 AfD를 비판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AfD 지도부가 8일 기자회견에서 2주 전 곤란한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독일 언론 빌트 소속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자 모든 독일 기자들이 항의의 표시로 기자회견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독일#afd#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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