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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슈뢰더, ‘유럽의 병자’ 취급받던 독일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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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슈뢰더, ‘유럽의 병자’ 취급받던 독일 일으키다

조종엽기자 입력 2017-09-02 03:00수정 2017-09-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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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김소연 감수·엄현아 박성원 옮김/464쪽·2만6000원·메디치미디어
2005년 사민당 전당대회의 슈뢰더. 그는 책에서 “고통스러운 개혁 시점과 성과가 가시화되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발생한다. 개혁의 효과가 당장 가시화되지 않으면 개혁은 시차의 나락 속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메디치미디어 제공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깊고 사회적 안전망이 두터운 유럽의 복지국가들과 한국은 그 출발점이 다르다. 그 나라들의 경제, 노동 정책이 웬만큼 오른쪽으로 움직여도 한국보다는 왼쪽이라는 얘기다. 유럽 중도좌파들의 ‘우향우’를 논하려면 잊어서는 안 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 개혁을 통해 독일이 오늘날 ‘유럽 경제의 슈퍼스타’로 떠오르는 바탕을 마련한 게르하르트 슈뢰더(73)의 자서전에는 눈길에 갈 수밖에 없다.

슈뢰더가 1998년 ‘적녹연정’(사민당-녹색당 연정·1998∼2005년)을 통해 집권할 때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의 활력이 줄고 있었다. 사람들이 전보다 연금을 오래 받는 데 반해 가입자 수는 감소했다. 통일의 후유증으로 지출 계산서는 쌓여만 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라인강의 기적’이 계속되리라는 막연한 희망에 머물렀다.

“개혁이 추상적인 단계에 있는 동안에는 ‘이 나라는 개혁돼야 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그 개혁이 영향을 미치면 개혁 거부로 돌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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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이다. 해고를 쉽게 하고,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줄이면서 지급도 까다롭게 하고, 노동 시간을 늘리고, 연금보험료를 안 내던 저소득층도 내게 하는 정책을 폈으니 반발이 없을 수 없다. 야당은 ‘연금 사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동을 걸었다. 경영자총협회는 개혁안이 충분하지 않다고 했고, 독일노조총연맹은 사민당과 결별하겠다고 했다. 저자는 사민당 총리로서 2004년 노동절에 독일노조총연맹의 집회에 초대받지 못하는 굴욕을 당한다.

마침내 집권 2기 슈뢰더는 선거에서 잇달아 패하고 지지율은 땅에 떨어진다. 2005년 5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선거에서 참패하자 승부수를 던진다.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다시 치르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사민당 없이 정부를 구성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득표하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저자의 정책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로 계승됐다.

책에서 슈뢰더는 깊은 철학을 바탕으로 이상을 실현하려는 거인이라기보다는 그저 필요한 일을 여우처럼 해내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보다 이런 실용적인 성향이 그의 개혁을 성공시켰는지 모른다.

저자가 ‘늙은 유럽’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동참하지 않은 일도 주목할 만하다. 슈뢰더 정책의 각론보다 중요한 건 국가와 지지층의 이익이 충돌했을 때 국가를 우선시하는 자세다. “외교와 안보에서 독립적인 나라가 되려면 탄탄한 경제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말도 가볍지 않다.

러시아에 접근하는 정책을 폈던 저자는 최근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의 고위직을 맡겠다고 해 선거를 앞둔 사민당에 ‘표가 떨어지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 뒤 경제 격차로 인한 후유증을 겪고 있던 독일이 오늘날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된 데는 저자의 공이 크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슈뢰더는 나치 독일에 착취당한 노동자에게 배상하기 위해 경제계를 설득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설립했다. 일본이 책의 부제처럼 ‘문명 국가로 귀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슈뢰더의 글 속에 답이 있다. “어떤 민족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려면 역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정면으로 응시하고,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김소연#엄현아#박성원#슈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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