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서동일]기업이 부도나면 노조도 부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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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산업부 기자
서동일 산업부 기자
8월에는 유독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자리가 많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학회·협동조합부터 인천 군수·구청장협의회, 국회 의원실까지 10여 차례의 토론 및 간담회가 열렸다. 이런 자리에 참석해 노조 파업, 통상임금 등 노사 분쟁 관련 발언들을 들으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이 있다. 노조는 기업을 ‘적’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협박, 착취 같은 단어가 담긴 문장 속에서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기업을 향한 애정은 좀처럼 느끼기 힘들다.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 한국의 ‘노사 협력 부문’ 순위는 매년 최하위권이다. 조사 대상인 148개국 중 지난해 순위는 135위다. 아무 나라나 대충 떠올려도 한국보다 노사 협력이 잘되고 있다는 의미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6위다.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김희성 교수는 22일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방안 세미나’에 참석해 일본 닛산 노동조합연합회 다카쿠라 아키라 회장(한국의 노조위원장)을 만났던 일화를 소개했다. “일본 자동차 노사관계를 한마디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다카쿠라 회장은 “기업이 잘돼야 근로자가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다. 노사 협의를 잘 마쳐 일본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라고 답했다.

기업이 살아야 노조가 살고, 기업이 부도가 나면 노조도 부도라는 자명한 말이다. 그런데 한국 노조 입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모든 데이터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가리키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수출 순위는 지난해 두 계단 낮아져 5위를 자치했다. 자동차 생산 실적도 인도에 추월 당해 6위로 떨어졌다. 현대·기아차 중국 생산법인인 베이징현대와 둥펑웨다기아 생산라인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와 함께 중국에 진출한 국내 145개 협력사 상반기(1∼6월) 매출은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내수·수출·생산량, 공장가동률, 연구개발(R&D) 투자액 등 모든 그래프가 하락세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대·기아차 노조는 올해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을 진행 중이다. 위기를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말은 찾기 힘들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노조는 기업을 근로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적으로 본다. 투쟁을 통해 임금 등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프레임에만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공동 운명체임을 망각한 극단적인 노사 대립은 공멸의 길’이라는 목소리에 노조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여러 토론회에선 위기 타개책도 나왔다. “전기차·친환경차 제품군을 빠르게 늘려야 한다” “스타트업 연계를 통해 새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전략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도 모두 안고 있는 숙제다. 그러나 노조가 기업을 적으로 여기는 한 묘책이 될 수가 없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김용근 회장은 한 행사장에서 기자를 만나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경쟁력은 내부에서 나오고, 그 기본은 노사관계다. 바닥을 치고 올라올 동력은 노사 간의 합심뿐이지 사실 다른 건 없다”고 말했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효율적인 근로조건 개선 방식임을 이제 한국 자동차 산업 노조도 깨달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다수 선진국 기업이 계속해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업의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도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대화와 소통을 전제로 하는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서동일 산업부 기자 dong@donga.com
#기업#부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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