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여 안녕, 현실과의 전쟁… 청춘드라마가 달라졌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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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학과-하숙집 좌충우돌 다룬 1990∼2000년대 드라마와 달리
대학 벗어나 꿈 개척하는 모습 그려… 중국집 배달원 등이 주인공 등장

1999∼2000년 방송된 SBS ‘카이스트’(첫번째 사진)에서 대학 캠퍼스는 청년들이 꿈과 우정을 키우는 공간이었지만 최근 청춘 드라마에는 캠퍼스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KBS ‘최강 배달꾼’은 책가방 대신 배달 철가방을 든 청춘들의 사랑과 성공기를 그렸다. SBS·KBS 제공
1999∼2000년 방송된 SBS ‘카이스트’(첫번째 사진)에서 대학 캠퍼스는 청년들이 꿈과 우정을 키우는 공간이었지만 최근 청춘 드라마에는 캠퍼스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KBS ‘최강 배달꾼’은 책가방 대신 배달 철가방을 든 청춘들의 사랑과 성공기를 그렸다. SBS·KBS 제공
“어차피 대학 졸업해도 좋은 직장은 SKY가 다 먹어. 너처럼 별 볼 일 없는 지방대 나와서는 대기업 연봉 절반도 안 되는 회사밖에 없다고. 그럼 엄마 아빠처럼 사는 거야. 죽어라 일하는데 빚만 늘어가. 이 나라 시스템이 그래.”(KBS 금토 드라마 ‘최강 배달꾼’ 2회 중)

다음 학기부터는 장학금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제발 한 학기 등록금만 빌려달라고 애원하는 남동생을 두고 여자 주인공 이단아(채수빈)는 매몰차게 일어선다.

이 드라마 등장인물의 나이는 평균 20대 중반. 남녀 주인공 직업은 중국집 배달원이다. ‘헬조선’을 탈출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학원에서 청소를 해주며 영어 강의를 듣는다. 이 드라마에서 대학은 지옥 같은 현실을 바꿔주기는커녕 빚만 늘리는 공간일 뿐이다.

TV 화면에서 ‘캠퍼스의 낭만’이 사라지고 있다. 취업난과 스펙 쌓기, 학점 경쟁 등 대학이 청춘의 고달픈 현실을 담은 경쟁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TV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1987년 KBS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국내 첫 캠퍼스 드라마가 등장한 이후 TV 속 캠퍼스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과거 청춘 드라마는 주로 대학 캠퍼스의 낭만과 이상을 배경으로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방송된 1987년의 대학 진학률은 전체 고교생의 36.7% 수준. 캠퍼스는 누구나 향유할 수 없는 공간이라 환상도 컸다.


드라마 속 전공 학문은 당시 인기학과의 트렌드도 보여준다. MBC ‘우리들의 천국’(1990년), ‘남자셋 여자셋’(1996년) 등 1990년대에는 신문방송학과가 인기였다. 당시 시청률 상위권을 달리던 ‘우리들의 천국’의 배경이 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유명한 얘기다.

2000년대 들어서는 MBC ‘논스톱’ 시리즈를 통해 하숙집과 기숙사에서 펼쳐지는 청춘들의 좌충우돌 대학 생활이 계속 전파를 탔다. 국내 평범한 캠퍼스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과학도의 일상과 사랑을 다룬 SBS ‘카이스트’(1999∼2000년), 해외 명문대 유학생들을 소재로 한 SBS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2004년)등이 인기를 끌었다.

최근 청춘 드라마는 아예 대학 캠퍼스를 다루지 않는다. 취업난과 캠퍼스 내 무한 경쟁 등 고달픈 세태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긴 이후 대학은 더 이상 판타지를 주는 공간이 아니다. 최근 유일하게 대학을 배경으로 한 MBC ‘역도요정 김복주’는 ‘체육대’라는 독특한 소재를 차용했을 뿐 스토리는 현실적 취업 경쟁에서 살짝 비켜갔다.

그 대신 최근 드라마들은 대학의 현실인 취업 전쟁과 스펙 경쟁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편을 택했다. 올해 5월 방송돼 인기를 얻은 KBS ‘쌈, 마이웨이’가 대표적 사례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대학을 벗어나 자신의 꿈을 개척하는 삶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청춘 드라마가 희망을 그리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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