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영화 집중분석①] 군함도·택시운전사·도가니, ‘실화’는 왜 흥행할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11일 06시 57분


덕혜옹주의 일생, 5·18 광주민주화운동, 조선인강제징용 문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는 실화영화의 소재가 됐다.
덕혜옹주의 일생, 5·18 광주민주화운동, 조선인강제징용 문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는 실화영화의 소재가 됐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사건 역시 수없다. 거기에 허구의 스토리를 덧댄다. ‘이야기로서 완결성’을 갖춘 또 다른 현실이 스크린에 구현되는 순간이다.

현재 상영 중인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아픔과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각각 소재로 삼은 두 작품은 화제와 논란 속에 적지 않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관객은 왜 이 같은 실화영화에 호응하는 것일까. 사실(fact)과 허구(fiction), 실화영화가 안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고민의 답은 또 무엇일까. ‘군함도’와 ‘택시운전사’를 계기로, 최근 10년간 흥행한 작품들을 통해 실화영화를 되짚는다.

■ ‘택시운전사’ 화제 속 실화영화를 다시본다


2003년 ‘실미도’ 첫 1000만 실화영화시대 개막
‘부러진 화살’ 심재명 대표 “신뢰감이 흥행 무기”
‘도가니’ 장진승 대표 “몰랐던 사실일 땐 폭발적”
제작 땐 사건 인물에게 허락 받는 등 세밀한 검토


#1. 2009년 9월


1997년 4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 씨가 살해당했다. 한국계 미국인 아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가 강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들은 범행을 부인했고, 사건은 영구미제로만 남겨지는 듯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뒤 법원은 아더 패터슨에게 살인혐의로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검찰의 재수사 뒤였다. 그 사이 재수사 여론에 불을 붙인 것은 해당 사건을 다룬 고 홍기선 감독의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었다.

#2. 2011년 9월

광주의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장애아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미 해당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일부 솜방망이 처벌이 마무리된 뒤였다. 하지만 작가 공지영이 이 사건을 토대로 쓴 소설 ‘도가니’를 원작 삼은 동명 영화가 개봉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더욱 커졌다. 장애인과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도 개정됐다.

#3. 2017년 8월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나섰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영화 내용 중 계엄군이 시민들을 조준 사격하는 장면이 “완전히 허위날조”이며 “당시 계엄군들이 공격을 받자 자위 차원에서 사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광주민주화운동은 “당시 상황이나 사건 자체는 폭동인 게 분명하지 않으냐”고 말한다. 하지만 엇비슷한 주장을 담은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법원은 이미 “사실과 다르다”면서 출판 및 배포 금지 판정을 내렸다.

한 편의 영화가 지닌 사회적 반향과 파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현실의 에피소드들이다. 그 가운데 한 편, ‘이태원 살인사건’을 만든 영화사 수박 신범수 대표는 “죽은 자는 있는데, 죽인 자는 없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처럼 2003년 영화 ‘실미도’가 최초로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이후 실제 현실에서 벌어졌던 사건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본격적인 실화영화가 잇따라 등장해왔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실화영화는 대중성 확보에도 성공하며 다수의 작품이 흥행하고 있다.



● 실화영화…왜 만들고 왜 보나

제작 관계자들은 사건 혹은 인물에 대한 “관객의 신뢰와 관심”에서 그 요인을 찾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부러진 화살’ 등을 제작한 명필름 심재명 대표 역시 “실화는 관객에게 ‘이건 진짜 이야기’라는 신뢰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은 “실제 사건을 기억하는 대중이 있다”면서 “실화영화는 그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실제 사건이 갖는 이야기의 명확성과 구체성, 확산성이 그만큼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 벌어졌던 이야기와 실존인물에 관한 정보가 없는 관객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도가니’와 ‘화려한 휴가’ 등 실화영화에 참여했던 장진승 오스카10 스튜디오 대표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 관객 반응이 더 커질 수도 있다”면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놀라움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도 “사건을 아는 이에게는 환기효과가, 모르는 관객에게는 또 다른 배움의 기회”가 되는 셈이라고 보탰다.

실화영화는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창작자들의 항상적인 고민이 낳은 또 다른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찬일 평론가는 “영화의 소재를 찾는 것은 모든 창작자의 고민거리다”면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기존의 사실을 활용하는 게 제작 측면에서 비교적 수월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신범수 대표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몰고 온 반향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실화를 통해 사회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려는 창작자로서 욕구가 있었다”고 돌이켰다.

● 실화영화…어떻게 만들어지나

그런 욕구 위에서 제작 관계자들은 실제 사건과 인물 그리고 그와 연관된 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실화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할 때 영화화에 대한 해당 인물들의 사전 허락을 받거나 최소한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든 심재명 대표는 “당시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과 임영철 감독 등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영화화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실제 사건을 그렸지만 관객이 결국 실제 인물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공적인 사건을 다루거나 극중 인물이 특정인으로 추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면 굳이 허락을 받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이는 각기 영화가 그려내려는 이야기에 따라 다를 수 이르다. 창작자의 판단에 달린 셈이다. 심 대표는 “사건이 품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와 그 실제 이해당사자가 맞물릴 경우 더욱 세밀한 고민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과 허구의 묘사, 그 경계선에서 창작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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