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or Not

  • 여성동아
  • 입력 2017년 8월 3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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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와 짝퉁에 대처하는 명품의 자세.

사방에서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패션 전공자가 아니어도 옷을 만들어 판매하고, 일반인이 모델과 함께 런웨이에 오르고, 비전공자도 패션 사진을 찍는다.

수백만원짜리 럭셔리 티셔츠와 SPA 청바지를 매치해 입거나, 럭셔리 브랜드에서 이름 없는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에게 협업의 손을 내미는 건 이제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올해 최고 이슈는 뉴욕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럭셔리의 자존심 루이비통의 콜래보레이션이다. 협업을 발표한 올 초부터 제품을 출시한 6월, 그리고 30배까지 치솟은 뒷거래 가격 때문에 판매를 중단한 7월까지, 두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가치는 역사에 남을 정도로 커졌다. 재미있는 것은, 약 20년 전에 두 브랜드가 법정 싸움을 벌인 앙숙이었다는 사실. 패러디 문화에 익숙한 슈프림이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로고를 슈프림 로고와 믹스해 스케이트 보드에 새겼다. 루이비통은 이를 고소했고, 제품은 판매 정지를 당하며 사건이 마무리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발표한 루이비통 × 슈프림 제품은 당시의 디자인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이번엔 협조했다는 것뿐.

인기 브랜드일수록 패러디 혹은 카피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제 럭셔리 브랜드들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잘 이용해보기로 한 것 같다. 지난해 구찌의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구찌의 로고를 패러디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구찌 고스트’를 오히려 수용했다. 아예 아티스트의 색깔을 그대로 반영한 ‘구찌 고스트’라는 액세서리 컬렉션을 만들었다. 베트멍의 뎀나 즈바살리아는 이보다 더 쿨하게 대응한다. 베트멍의 서울 팝업 스토어를 오픈할 때 베트멍의 짝퉁 제품을 패러디한 공식 짝퉁 ‘오피셜 페이크 컬렉션’을 만드는가 하면, 베트멍을 패러디하는 브랜드 ‘베트밈스’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자본주의의 마지막 지조마저 내려놓은 듯한 행보도 엿보인다. 패러디 아티스트에 너그러워진 구찌는 2018년 크루즈 컬렉션을 발표하자마자 디자인 카피에 대한 논쟁에 휩싸였다. 첫번째 논란은 구찌 로고가 도배된 커다란 퍼프소매의 퍼 코트. 이 코트는 1980년대 할렘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대퍼 댄(Dapper Dan)의 코트와 흡사하다. 이 코트의 소매에는 구찌 대신 루이비통 로고가 사용되었다. 댄은 당시 럭셔리 브랜드의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했고, 브랜드들의 소송으로 디자인을 중단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루이비통의 짝퉁을 진짜 구찌가 다시 카피한 셈이다. 이 코트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구찌는 이번 컬렉션이 ‘진짜-가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뒤늦게 대퍼 댄의 디자인을 차용했음을 인정했다. 이외에도 호주와 뉴질랜드 출신의 각 디자이너와 두 건이나 더 카피 논쟁이 있었고, 구찌는 한 달이 지나서야 잘못을 시인하며 해당 디자인을 모두 없애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구찌와 함께 당대 가장 핫한 브랜드인 발렌시아가도 카피 논란에 있다. 발렌시아가의 2018년 S/S 컬렉션의 한 셔츠가 힙합 레이블 러프 라이더스에서 2000년에 만든 셔츠를 카피했다는 것. 이 셔츠는 러프의 R 로고가 발렌시아가의 B 패턴으로 바뀌는 등 약간의 변형만 있을 뿐 아주 비슷하다. 러프 라이더스 출신의 거물 프로듀서 스위즈 비츠는 그의 SNS에 두 제품을 비교하는 사진을 올리며 발렌시아가를 비난했다. 발렌시아가는 아직까지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지만, SNS와 주요 매체에 해당 룩만 빼고 컬렉션 사진을 올렸다. 패러디를 즐기는 발렌시아가의 수장 뎀나 즈바살리아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사진 REX 디자인 이지은

editor 배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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