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불 횡단보도’ 어른 과실에… 다섯살의 삶-가정 산산조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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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시즌2]<2> 뇌병변 장애 1급 예준이의 비극

15일 인천 부평구의 한 재활요양병원 병실에서 유모차에 앉아 있는 예준이를 어머니 이경림 씨가 돌보고 있다(위쪽 사진). 교통사고 전 유치원에 다니던 예준이는 늘 밝게 웃는 아이였다(아래쪽 사진). 동아일보는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의 아픔을 전하기 위해 이 씨의 허락을 받아 예준이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인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5일 인천 부평구의 한 재활요양병원 병실에서 유모차에 앉아 있는 예준이를 어머니 이경림 씨가 돌보고 있다(위쪽 사진). 교통사고 전 유치원에 다니던 예준이는 늘 밝게 웃는 아이였다(아래쪽 사진). 동아일보는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의 아픔을 전하기 위해 이 씨의 허락을 받아 예준이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인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엄마 울지 마세요. 엄마가 울면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파요. 꼭 나아서 같이 집에 가요.’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정면만 향하던 예준이의 초점 없는 시선이 울고 있는 엄마를 향했다.

조예준 군(11)을 만난 건 15일 인천 부평구의 한 재활요양병원에서다. 예준이 곁에는 어머니 이경림 씨(38)가 늘 함께 있다. 예준이는 다섯 살이던 2011년 6월 1일 인천 계양구의 한 이면도로에서 녹색 신호를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를 당했다. 1t 화물차를 몰던 운전사가 앞을 제대로 보지 않다가 그대로 예준이를 친 것이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예준이는 사고 후유증으로 1급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됐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목에 걸리지 않을 만큼 작은 음식물을 삼키는 정도다.

○ 3년이 지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인 엄마

이날 예준이는 약 24.45m² 크기의 2인실 병실에서 환자용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유모차에 달려 있는 안전벨트가 예준이를 떨어지지 않게 받쳐주고 있었다. 가래가 쌓이면 흡입기를 집어넣어 빼낼 수 있게 목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고 당시 몸무게는 5세 표준인 18kg이었지만 지금은 또래 표준의 65%인 25kg에 불과하다.

예준이의 앙상한 팔다리는 굽어 있었다. 갈수록 몸이 굳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물리치료사들이 스트레칭을 해준다. 이 씨의 하루 일과도 대부분 손으로 예준이의 몸을 마사지하는 것이다.

사고 직후 병원에 옮겨진 예준이는 이틀 정도 의식이 있었다. 의사가 예준이 부모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예준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잠깐 의식을 찾아 엄마와 짧은 대화도 했다. 하지만 심각한 후유증 탓에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리고 7년째 병원에서 살고 있다.

예준이의 장애 판정은 늦었다. 사고 후 3년 5개월이 지나서다. 신체적으로 장애가 확인된 뒤에도 이 씨가 신청을 미뤘기 때문이다. 아들의 상황은 물론이고 예준이를 이렇게 만든 사고 자체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하지만 쌓여만 가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아들을 장애인으로 등록시켜야 한다는 현실을 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었나 봐요. 멀쩡한 아이였는데, 멀쩡한 애였는데….”

“예준이가 일곱 살 되던 해 집으로 취학통지서가 왔는데,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네요. 얼마나 울었는지….”

병실 입구 옆 수납장 문에는 사고 3개월 전 예준이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유치원에서 찍은 사진 속 예준이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아들과 함께 멈춰버린 가족의 삶

이 씨의 삶은 7년째 2인실 병실 절반에 갇혀 있다. 하루도 예준이 곁을 떠날 수 없어서다. 그래서 예준이 침대 옆에는 병실용 기본 수납장 외에 옷과 생필품 등을 넣을 수 있는 수납장이 3개나 더 있었다.

수납장 안에는 예준이 아빠(41)의 옷도 있다. 올 1월 60m² 남짓한 전셋집을 처분한 뒤 이 씨는 남편의 옷가지 일부를 병실에 옮겨 놓았다. 나머지는 근처 친정집에 뒀다. 늘어나는 병원비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중소 전자회사에서 납품 업무를 하는 아빠는 일 때문에 주말에만 병원에 들른다. 평소에는 회사 업무용 승합차에서 잠을 잔다. 원래 예준이 아빠는 술을 못했다. 그러나 예준이가 사고를 당한 뒤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예준이 가족은 지난해 주민센터 권유로 차상위계층 등록을 마쳤다. 그 덕분에 병원비가 한 달 30만 원 안팎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부담스럽다. 병원 소개로 지난해 8월부터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매달 20만 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은 2000년부터 교통사고 피해자의 생계를 지원해 주고 있다. 교통안전공단 인천지부 장경란 차장은 “앞으로 구체적인 상담을 통해 예준이 가족에게 어떤 지원이 더 필요한지 살필 예정”이라고 말했다.

예준이 누나(13)와 외할머니는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다. 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누나와 외할머니 그리고 예준이가 함께 집에 가던 중이었다.

“그날 이후 딸아이는 부쩍 말이 없어졌어요. 활달했던 아이인데. 주말에 예준이를 보러 올 때도 예준이한테 인사 정도만 할 뿐이에요.”

다음 달 14일은 예준이의 11번째 생일이다. 병원에서 케이크를 사다 놓고 조촐한 파티를 할 예정이다.

너무나 변해버린 현실에 이 씨는 한때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병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힘든 마음에 “엄마랑 같이 죽을래”라는 말이 독백처럼 흘러나왔다. 당시 약간의 의식이 있었던 예준이는 아무 말 없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죽으면 예준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약해지곤 했죠. 하지만 이제는 예준이 앞에서도 약한 모습 안 보이려고 해요. 언젠가는 건강하게 나은 예준이와 함께 집에 꼭 돌아갈 거예요.”

인천=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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