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편한 길’ 상인엔 한숨 나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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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 3년
보행환경 개선 겉모습은 성공적… 차량 접근성 떨어져 상권은 쇠퇴
상가 1층 프랜차이즈 업체들 점령… 길거리 공연 늘며 소음 민원 급증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고양이 탈을 쓴 한 카페 직원이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주말(토요일 오후 2시∼일요일 오후 10시)에 이 일대는 보행자 전용인 ‘차 없는 거리’가 된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고양이 탈을 쓴 한 카페 직원이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주말(토요일 오후 2시∼일요일 오후 10시)에 이 일대는 보행자 전용인 ‘차 없는 거리’가 된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선 퇴근길 인근 도로의 교통체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2번 출구부터 연세대 건너편 도로까지 이어지는 약 550m의 전용지구를 오가는 건 시내버스 10여 대가 전부였다.

연세로의 변신은 3년 전 서울시가 이 일대를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평일에는 16인승 이상 승합차와 자전거 등만 다닐 수 있도록 했고 주말에는 버스마저 통제한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고 있다. 다만 택시는 자정부터 오전 4시 사이(주말 제외)에는 통행 가능하다.

서울시는 지구 조성으로 사람들이 걷기 편하게 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침체된 신촌 상권을 살린다는 계획이었다. 차량 통행이 줄고 보행 환경이 개선되면서 서울시의 실험은 언뜻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행 3년째인 올해 평가는 엇갈렸다.

○ 차량 출입 통제로 매출 준 상인들 울상

상인들은 요즘 고개를 내젓고 잇다. 익명을 요구한, 허가받은 노점상 A 씨(41)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 후 방문객이 줄면서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졌다. 수입 감소로 떠난 상인들이 수두룩하다”며 “최소한 택시라도 출입을 허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권이 살아나려면 10, 20대 젊은층보다는 구매력이 큰 손님들이 와야 하는데,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차량 접근성”이라면서 “차량이 통제되고 주차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곳의 상권이 쇠퇴하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박성열 신촌번영회 고문은 “서울시와 서대문구에 일부 도로를 열어주거나 인근에 주차장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걷고 싶은 길’이 되도록 하겠다는 당초 계획과 달리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거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상인 정모 씨(70)는 “주요 도로에 들어선 매장 대부분은 화장품, 이동통신사 같은 대기업 브랜드”라면서 “걸으면서 즐길 것이 딱히 없다 보니 스쳐 지나가는 거리가 돼버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주변을 둘러본 결과 대중교통전용지구 1층 매장 100여 곳 가운데 대기업 체인점이 아닌 상점은 10여 곳에 그쳤다. 대학생 이모 씨(26)는 “걷기는 편하지만 오락거리나 특색 있는 가게들이 별로 없어 이곳만의 큰 매력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문화공연 늘었지만 민원도 급증

밴드 공연 같은 길거리 문화 이벤트는 늘었다. 서대문구에 따르면 이 일대의 행사를 허가한 건수는 2015년 519건에서 지난해 602건으로 증가했다. 매년 물총축제, 맥주축제 같은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반면 밤 시간 잦은 공연으로 인한 소음이나 쓰레기 문제 같은 주민 불편사항과 상습적인 교통법규 위반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서대문구는 오후 9시 이후 길거리 공연을 불허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오후 10시 반경에도 음향장비를 설치해 이른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버스 말고 이륜차를 포함한 일반 차량의 통행은 금지돼 있지만 오토바이나 승용차도 자주 눈에 띄었다. 주말을 제외하곤 찻길로 걸을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서슴지 않았다. 한 20대 남성은 중앙선 위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도 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야간공연 등에 대한 민원이 많아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규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며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대중교통전용지구#연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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