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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무작정 기부, 누구를 위한 선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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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무작정 기부, 누구를 위한 선행인가

손택균기자 입력 2017-03-04 03:00수정 2017-03-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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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이타주의자/윌리엄 맥어스킬 지음/전미영 옮김/312쪽·1만6000원·부키
저자는 “공정무역 커피가 미국에서 일반 커피보다 파운드당 5달러 더 비싸게 팔리지만 커피 생산자가 추가로 받는 금액은 그 8%에 해당하는 파운드당 40센트 정도”라고 썼다. 공정무역 제품을 무조건 비판할 필요는 없지만 참고할 만한 지적이다. 사진 출처 muwado.com
출근길 회사 건너편 카페에서 ‘공정무역’ 스탬프가 찍힌 커피를 주문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공익단체 로고를 걸어놓은 빈민구호기금 모금함에 잔돈을 넣었다. 점심식사는 ‘수익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소박하게나마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겠다는 이타심을 발휘한, 그럭저럭 보람된 하루였을까. 작은 선택과 행동 하나하나를 이끈 마음속 선의의 가치는 의심할 나위 없다. 그러나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선의에만 의존한 행위는 세상에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 모금 담당자의 말만 믿고 들어본 적도 없는 자선단체에 기부를 한다. 하지만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해를 입힐지. 이타적 행위가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여주는 적절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여러 번 의심하며 여기저기 다시 들추며 읽었다. 이 사람 혹시 공연한 트집쟁이 아닐까 싶어서. 선의의 기부 활동에 정나미 떨어지는 비판적 분석의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자신의 명망을 높이려 든 오만한 책상물림 학자가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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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의 결론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다. ‘가능의 영역만 바라보겠다’는 다짐을 ‘한 사람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편리한 결론과 혼동하고 있었음을 돌아보게 했다.

지은이는 ‘내가 나서서 누군가를 도우려 해봤자 어차피 커다란 양동이에 물 한 방울 보태는 정도의 미미한 효과뿐이거나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므로 이타적 삶 따위는 포기하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를 도울 것인지 결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결정”이라는 전제 아래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효율적 기부를 실행하기 위한 판단과 선택의 기준을 제시한다.

“숫자와 이성을 들이대면 선행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 탓에 신중한 고민 없이 무턱대고 행동부터 함으로써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성공한 자선가들은 자신이 남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안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실행 방안을 미리 실험한 뒤 증거에 따라 행동한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기부 사업에 숫자와 이성을 들이대 검토해보려 할 때 ‘아 이렇게 좋은 일을 왜 까칠하게 따져 물으려 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선량해 보이는 가면 뒤 얼굴은 어떤 표정일까. 기부금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실제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지 구체적으로 답하지 못하는 까닭은 뭘까. 지은이는 “기부 성과의 효율 차이는 단체에 따라 수백 배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대다수 자선단체가 당신이 낸 돈으로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답하지 않는다. 공정무역 제품이라는 이유로 소비자가 추가로 낸 돈 중 실제로 농부들 수중에 떨어지는 건 극히 일부다.”

기부하되 꼼꼼히 따져 보고 하라는 조언이다. 잠깐의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책이 알려주는 기준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겠지만 행동의 동기와 방향을 환기하는 계기로는 넉넉한 길잡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냉정한 이타주의자#윌리엄 맥어스킬#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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