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시간을 초월하면 복권번호를 맞힐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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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1962년 11월호 ‘네이처’에 미국의 고생물학자 존 웰스의 논문이 실렸다. 제목은 ‘산호의 성장과 지질 연대 측정법’이다. 논문은 지구의 자전이 데본기 중기에 훨씬 더 느려졌다고 설명했다. 데본기는 고생대를 6기로 나누었을 때 4기에 해당한다. 지금으로부터 3억9500만 년 전부터 3억4500만 년 전, 약 5000만 년간의 시기가 데본기이다.

존 웰스는 산호의 성장선을 연구했다. 산호는 하루에 약 1개의 성장선이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생긴다. 그런데 산호의 화석을 보니 데본기에는 400개가 있었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산호한테는 1년이 400일이었던 셈이다. 데본기에는 하루가 22시간 정도였다. 데본기에 비해 계속해서 지구의 자전 속도는 느려졌지만 공전 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웰스의 연구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함이다. 우주는 빅뱅부터 팽창까지 흘러가고 있다. 한 점이 온 우주를 만들어내고 수소와 헬륨을 퍼뜨렸다. 수소와 헬륨은 무수히 많은 조합을 거쳐 태양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태양에너지는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변화해 간다. 우주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 즉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으로 향해 간다. 정자와 난자라는 세포의 결합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나중엔 소멸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렇듯 단방향이다.

복권 구입을 예로 들어 보자. 복권 구입과 당첨번호 선택 시점은 전과 후로 고정돼 있다. 즉 선형적이다. 3차원에 살고 있는 인간은 시간의 방향성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은 정말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시간을 반직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은 집합에 가깝기도 하다. 선이라는 건 점들의 집합이고, 그 점들은 순간으로 기억되고 나의 시간을 구성한다. 찰나의 순간들이 집합으로 모여 있는 것이다. 즉, 시간은 반직선이 아니라 집합에 가까울 수 있다.

단방향의 시간은 인과율과도 연관된다. 과거의 나의 행동이 지금의 나, 또는 미래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영화 ‘컨택트’(드니 빌뇌브 감독)는 시간의 상식을 흔들어 놓는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로 인해 과거이자 현재이며 곧 미래가 되는 일들이 바뀌는 설정을 갖고 있다. 흔히 보아 왔듯 미래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사건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감지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시간의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영화에선 시간이 선형적이지 않고, 18개월 후의 몇몇 순간들이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 물론 SF 영화답게 외계인의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분명 흐름이 있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와 연결되고 시간이 흐르는 건 변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반직선처럼 계속 흐르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모음이 퍼즐로 조금씩 완성된다. 그렇다면 더더욱 시간은 집합과 유사하다.

다시 복권 얘기로 돌아가 보자. 종종 꿈을 꾸거나 어떤 예지력으로 복권에 당첨됐다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그들이 영화처럼 미래의 자신이 겪은 것을 현재에 알아차린 것이라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시간이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퍼즐을 맞추진 못하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당첨자들은 한두 조각쯤은 우연히 봤다. 그래서 복권이 당첨됐다. ‘빽 투 더 퓨쳐’ 같은 영화처럼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한테로 가서 복권 번호를 알려준 게 아니다. 흩어진 시간을 현재의 내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감지한 것이다. 물론 이는 모두 영화를 토대로 한 가정일 뿐이다.

시간이 순간들의 집합이라고 해도 사건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 일종의 운명론이고 결정론이다. 내가 산 복권이 꽝이라는 사실은 결정돼 있다. 물론 누군가 당첨된다는 사건 역시 정해져 있다. 빛은 목적지를 정해 놓고 있으며, 시간은 사건의 결과 위에 혹은 전면에 걸쳐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딸이 태어나면 죽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운동이다. 해와 달과 별이 변하는 모습은 시간의 기준이다. 그러나 시간은 시간만으로 측정되지 않고 중력과 공간, 이전과 이후 시간, 시간을 인식하는 주체의 영향을 받는다. 웰스가 발견한 먼 옛날 산호는 1년이 지금보다 느렸다.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이 잘 밝혀냈듯이 속도나 중력이 엄청나게 변화하면 개별 존재자에게 시간은 상대적으로 인식된다. 특히 그 시간이 선형적이지 않고 집합의 의미를 갖는다면, 인류는 제2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경험할 것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네이처#존 웰스#산호의 성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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