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北측의 시신인도 요청 거부… 부검 참관도 막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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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피살] 北 외교 입지 타격
北 소행땐 주권 침해 논란 커질 듯… 말레이시아 외교관계 단절 가능성


김정남 피살과 시신 처리 등을 둘러싸고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외교 갈등이 시작됐다. 사건 직후 북한 측의 시신 인도 요청을 거절한 말레이시아는 15일 부검 과정을 참관하게 해 달라는 북한 측의 요구를 다시 거절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사 결과 이번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면 주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져 최악의 경우 외교관계에도 손상이 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압둘 사마 말레이시아 셀랑고르 주 경찰서장은 이날 채널A와의 통화에서 “북한 측 인사의 (부검 참관은) 허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이날 김정남 시신 부검이 실시된 쿠알라룸푸르병원에 관용차를 타고 나타났다가 돌아갔다. 최고지도자(김정은)의 큰형 시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는 평양의 지령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양국의 실랑이는 이제 시작인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 측 소행이라는 세간의 관측을 뒷받침하는 부검 결과를 발표하면 북한 측은 이를 반박하며 말레이시아 정부에 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시신 송환 과정도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TV아사히에 따르면 마카오의 김정남 가족과 북한 측은 서로 자신들에게 시신을 인도해 달라고 요청하며 피 말리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 소행이 사실이라면 말레이시아는 자국 영토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굉장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며 “수사 결과에 따라 외교관계를 단절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일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북한 소행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국교 단절까지 갈 수 있다”면서도 대안으로 “주북한 말레이시아 대사를 소환하고 참사관이나 서기관을 임시대리대사로 세워 외교관계의 격을 낮추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과거 제3국에서 테러 행위를 벌이다 외교무대에서 위기에 빠진 경력이 있다. 1983년 10월 북한 공작원은 버마(현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 테러를 단행했고 서석준 부총리 등 한국 정부 고위급 인사 다수를 포함한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3명이 사망했다. 당시 ‘남북 등거리 외교’를 강조하면서도 북한과 가깝게 지내던 미얀마는 북한 소행이 확인된 뒤 외교관계를 단절했고 2007년에야 국교를 다시 정상화했다.

북한은 말레이시아를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겨왔다. 북한 고위층이 치료를 목적으로 방문하고 광원과 정보기술(IT) 전문가 등을 파견할 뿐 아니라 지난해 10월 미국과 비공식 접촉 장소로 사용할 정도로 편안함을 느끼는 국가다. 말레이시아와의 관계 악화가 북한에 큰 손실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말레이시아 주변국 역시 상황에 따라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고 부원장은 베트남 등 주변국이 북한이 자국민을 가장한 공작요원을 가동 중이라고 주장하며 문제 제기를 시작할 경우 북한의 외교 위기는 “일파만파로 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대사관이 말레이시아에서 바쁘게 움직인 반면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조선중앙TV 등 공식 매체는 침묵을 지켰다. 통일부에 따르면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이 1997년 피살될 때도 북한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당분간 한국 등 국제사회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대응 전략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15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16일) 75돌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했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김정안 채널A 기자
#북한#말레이시아#김정남#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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