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리포트] 대표팀의 숨은 일꾼, 불펜포수들의 쉴 틈 없는 하루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2월 16일 05시 30분


불펜포수. 마스크 속에 감춰진 얼굴처럼 불펜 깊숙이 숨어있지만 대표팀에 꼭 필요한 소금 같은 존재들이다. 15일 일본 오키나와 우루마시 구시카와구장에서 WBC 대표팀 불펜포수 박성큼(왼쪽)과 양희현이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오키나와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불펜포수. 마스크 속에 감춰진 얼굴처럼 불펜 깊숙이 숨어있지만 대표팀에 꼭 필요한 소금 같은 존재들이다. 15일 일본 오키나와 우루마시 구시카와구장에서 WBC 대표팀 불펜포수 박성큼(왼쪽)과 양희현이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오키나와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은 12일부터 일본 오키나와 우루마 구시카와구장에서 전지훈련에 한창이다.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28명의 선수,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외에도 5명의 트레이너, 4명의 훈련보조요원이 대표팀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이들 중 불펜포수 양희현(25·넥센), 박성큼(28·두산)이 공을 만지는 횟수는 선수들의 몇 배에 달한다. 손에 물집이 생기고, 온 몸이 땀범벅이 돼 고통의 연속이지만, 둘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15일 불펜피칭을 마친 차우찬이 “수고했다”고 하니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이 한 마디는 그들이 버티는 원동력이다. 스포츠동아가 이들의 하루를 집중 조명했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이 15일 일본 오키나와 우루마시 구시카와 야구장에서 공식훈련을 가졌다. WBC 대표팀 불펜포수 박성큼(왼쪽)과 양희현이 훈련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오키나와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이 15일 일본 오키나와 우루마시 구시카와 야구장에서 공식훈련을 가졌다. WBC 대표팀 불펜포수 박성큼(왼쪽)과 양희현이 훈련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오키나와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장비 옮기고, 공 받고…쉴 틈이 없다

양희현과 박성큼은 1월31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괌 미니캠프부터 선수들과 함께했다. 국제대회가 열리면 KBO는 2개 구단에서 불펜포수를 차출하는데, 이번이 넥센과 두산의 차례였다. 이들은 대표팀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될 때까지 선수단을 돕는다. 대표팀이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 최종라운드에 진출하면 그만큼 일정도 늘어난다. 엄연한 대표팀의 일원이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선수들의 훈련 도구를 옮기는 일부터 시작한다. 15일 선수단 훈련의 시작 시간을 10분 앞둔 오전 9시50분. 둘은 불펜으로 공바구니를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전에 차우찬(LG)과 장원준, 이현승(이상 두산), 원종현(NC), 장시환(kt)의 불펜피칭이 예정돼 있어서다. 본격적으로 훈련이 시작되면 할 일이 몇 배로 늘어난다. 단순히 불펜피칭을 하는 투수들의 공을 받아주는 일뿐만이 아니다. 배팅볼을 던져주고, 캐치볼을 돕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공식 훈련시간이 끝나고 타자들이 특타(특별타격훈련)를 자청하면, 또 배팅볼을 던져줘야 한다. 훈련준비를 마치고 선수들을 기다릴 때가 이들의 유일한 휴식시간인 셈. 현장 관계자들과 선수들도 “불펜포수들이 정말 많이 고생한다. 가장 바쁘다”고 입을 모았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이 15일 일본 오키나와 우루마시 구시카와 야구장에서 공식훈련을 가졌다. WBC 대표팀 불펜포수 박성큼이 공을 받고 있다. 오키나와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이 15일 일본 오키나와 우루마시 구시카와 야구장에서 공식훈련을 가졌다. WBC 대표팀 불펜포수 박성큼이 공을 받고 있다. 오키나와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불펜피칭, 단순한 공 받기 이상의 의미

불펜피칭 때는 이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공을 받을 때마다 “나이스 볼”을 외치며 투수의 기를 살려주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수의 구위를 파악하는 것인데, 양희현은 “불펜피칭 시 투수들의 구위는 공을 받아본 사람이 가장 잘 안다. 정말 확실히 알기 위해선 호흡을 맞췄던 투수의 공을 계속 받아봐야 한다. 그래야 이전 불펜피칭과 다른 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빅성큼은 “대표팀에서 처음 불펜피칭을 하기 전에는 잘 몰랐다”며 “두산에도 좋은 투수들이 많지만, 국가대표 투수들의 공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이자 영광이다. 무엇보다 투수들의 공을 잘 받아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간혹 투수들이 ‘어떠냐’고 물어볼 때 의견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대표팀 김광수 수석코치는 “불펜포수들은 기본 업무 외에 보이지 않는 역할까지 다 한다. 할 일이 정말 많다”고 했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이 15일 일본 오키나와 우루마시 구시카와 야구장에서 공식훈련을 가졌다. WBC 대표팀 불펜포수 박성큼(왼쪽)과 양희현이 포수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오키나와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이 15일 일본 오키나와 우루마시 구시카와 야구장에서 공식훈련을 가졌다. WBC 대표팀 불펜포수 박성큼(왼쪽)과 양희현이 포수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오키나와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힘들다고? 우리는 행복합니다”

대부분의 불펜포수들이 그렇듯이 양희현과 박성큼도 한때 프로선수를 꿈꿨다. 그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지금의 위치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양희현은 2010년 LG에 육성선수 테스트를 받으러 갔는데, “불펜포수로 입단하라”는 한 마디에 인생이 바뀐 케이스다. 2013년에는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기 위해 지원서를 넣었는데, 1차 합격자 발표가 미뤄지더니 결국 구단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불펜포수 양희현의 인생이 시작된 시점이다. 그는 “투수들을 기분 좋게 해줄 때와 내가 던진 배팅볼을 타자들이 잘 쳐줄 때, 그리고 ‘수고했다’는 한 마디를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작은 것에 감동받을 줄 알게 됐다”고 했다.

박성큼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야구계를 떠나고 싶지 않아 2013년부터 두산 불펜포수로 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선수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그는 “불펜포수가 힘든 직업이라고 하는데, 나는 정말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올해 두산이 통합우승을 했고, 대표팀에도 합류하게 돼 그야말로 겹경사다. 내 위치에서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뤘다. 선수들과 함께하며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대표팀이 선전해서 꼭 미국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키나와(일본)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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