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의 지혜]합리적 판단까지 마비시키는 가난과 배고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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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는 ‘상덕약곡(上德若谷)’, 즉 골짜기처럼 텅 비우고 나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했다. 돈이나 물질을 너무 밝히면 행복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난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가난과 풍요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아마 10명 중 9명은 풍요를 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난은 사람들의 사고와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난은 극복의 대상인가, 이해의 대상인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의사 결정은 감정적 사고와 반응을 주관하는 ‘시스템1’과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주도하는 ‘시스템2’에 의해 내려진다. 둘은 협업하며 인간의 생존에 기여하고, 한 몸을 가진 두 개의 머리처럼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시스템1을 보완하고 냉철하게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해주는 시스템2를 지탱하는 정신적 에너지는 ‘심리적 대역폭’으로 불린다. 시스템2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인 요소들의 결합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가난이 이 같은 심리적 대역폭의 역할을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하버드대 쇼필드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양 섭취를 충분히 못한 사람들의 과업 수행 능력은 영양 섭취가 좋은 사람들의 수행 능력의 89% 수준에 불과했다. 배고픔이 신체적 고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의사 결정 능력도 저하시킨다는 뜻이다.

 또 가난한 이들이 고통을 잊으려 선택하는 술 역시 의사 결정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스킬바크 교수가 인도 첸나이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조사한 결과 음주량을 줄인 노동자들의 저축액이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의 저축액보다 무려 60%나 높았다. 술에 취해 몸과 마음이 비틀거리면 대역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판단, 선택, 결정의 연속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 필요로 하는 시스템2는 가난이라는 장애물에 막혀 적잖은 방해를 받는다. 제대로 된 판단과 행동을 하려면 시스템1과 2의 조화가 필요한데 가난이 그 조화를 근본부터 방해하는 셈이다.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swkwag@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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