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감각만 살아있고 표출하지 못하는 자의 분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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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소리와 분노/윌리엄 포크너 지음/공진호 옮김/455쪽·1만5000원/문학동네

지난 일주일 동안 735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인간의 오감 중 수동적인 감각은 단연 청각이다. 어떻게든 잠시라도 차단할 수 있는 다른 감각과 달리 들려오는 소리를 막을 재간은 없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감각 역시 청각이다. 말은 할 수 없고 듣기만 해야 할 때 쌓이는 분노는 어떻게 처리될 수 있을까.

‘소리와 분노’는 콤슨 가문의 막내이자 천치인 벤지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는 생각과 판단이 불가능하다. 감각만이 맹렬히 살아 있다. 골프장의 빨간 깃발을 보고, 누나 캐디의 몸에서 나는 나무 냄새를 맡고, 수많은 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듣는다. 자신의 감각에 꽂히는 정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이런 감각은 고스란히 그의 감정이 된다. 벤지의 귀는 몰락해 가는 자기 가족의 모든 어처구니없는 대화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고, 그로 인해 그는 끊임없이 울부짖으며 분노한다.

소리 때문에 분노하는 벤지는 사실 서사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관객이다. 벤지가 지켜보는 ‘가족의 몰락’은 단순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을 간단한 줄거리로 정리하는 일은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포크너의 모더니즘적 서술기법이나 언어실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각만 살아 있는 벤지의 심리뿐 아니라 누이동생 캐디를 사랑한 맏아들 퀜틴의 심리,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퀜틴의 남동생 제이슨의 심리, 콤슨 가문의 모든 걸 지켜봐 온 가정부 딜지의 심리, 캐디와 그녀의 딸 퀜틴(동명이인)의 심리까지 독자의 감정이입이 충분히 이뤄질 때만이 이 작품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사실 모더니즘 ‘이론’보다 중요한 건 누이동생을 가질 수도 보낼 수도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퀜틴의 ‘심정’ 아닌가. 주목할 것은 포크너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벤지가 천치라는 점을 이용해 사건의 시간대를 모두 뒤섞고, 타동사의 목적어를 생략하고, 심지어 두 인물에게 퀜틴이라는 같은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이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능동적으로 의미를 해석하며 작품을 읽는다면, ‘소리와 분노’의 차원에 머물러 있던 독자는 순식간에 ‘참여와 기쁨’의 차원으로 격상될 것이다.

윤성훈 경기 파주시 금촌동
#소리와 분노#윌리엄 포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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