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페르소나’… 저자와 번역가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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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파워라이터들과 짝 이루는 번역가들

영화계에는 ‘페르소나(persona)’란 말이 있다. 짝을 이뤄 여러 작품에 함께하는 감독의 ‘분신’이자 ‘아바타’인 배우를 말한다. 국내 출판계에도 해외 유명 저자의 작품을 도맡아 번역하는 ‘번역 페르소나’가 여럿 있다.

대표적인 번역 페르소나로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전담하다시피 한 이세욱 번역가가 꼽힌다.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나온 이 씨는 2001년 나온 ‘개미’부터 ‘제3인류’ ‘나무’ ‘웃음’ ‘뇌’ ‘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베르베르와 이 씨의 관계는 단순한 저자와 번역가 이상이다. 이 씨는 번역을 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전화나 이메일 등으로 수시로 저자와 소통한다.

베르베르의 책을 다수 출간한 출판사 열린책들 안성열 주간은 “이 씨는 ‘뇌’를 번역할 때 뇌 구조를 몇 개월 공부할 만큼 학구파”라며 “베르베르의 책을 한국적인 문체로 빚어낸 공로가 크다”고 말했다.

‘분노’ ‘타이베이의 연인들’ ‘캐러멜 팝콘’ ‘파크 라이프’ ‘악인’ 등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이영미 번역가를 통해 한국 독자와 만났다. 이 씨는 2009년 ‘캐러멜 팝콘’과 ‘악인’으로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주관하는 보라나비저작·번역상을 수상한 실력파다. 요시다 작가의 책을 다수 낸 출판사 은행나무 주연선 대표는 “이 씨는 일본 출판사로부터 ‘원작 못지않게 풍부한 문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스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작품이 많아 두 명의 번역가가 주로 맡는다. 초기작인 ‘해변의 카프카’ ‘중국행 슬로보트’ ‘밤의 거미 원숭이’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등은 김춘미 고려대 명예교수(일어일문학)가 번역했다. ‘1Q84’ ‘여자 없는 남자들’ ‘도쿄 기담집’ 등은 양윤옥 번역가의 손을 거쳤다.

김 교수는 무라카미의 작품 번역에서 유의할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루키는 책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다. 작품마다 같은 작가라고 느낀 적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문장의 리듬감이 좋다. 번역할 때 리듬감을 잘 살리려고 노력했다.”

역시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도 ‘가면 산장 살인사건’ ‘오사카 소년 탐정단’ ‘신참자’ 등은 김난주 번역가가, ‘갈릴레오의 고뇌’ ‘용의자X의 헌신’ ‘예지몽’ 등은 양억관 번역가가 담당했다.

지난해 각종 베스트셀러 집계 1위를 휩쓴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이어 나온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도 임호경 씨가 한국적인 문체로 번역했다. 임 씨는 유머가 넘치는 요나손의 작품을 한국적인 유머가 담긴 문장으로 옮기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서적도 저자와 번역가의 궁합이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에 이어 그의 차기작 ‘더 그레이트 디바이드’도 이순희 번역가의 손을 거쳐 조만간 국내 출간될 예정이다. ‘긍정의 배신’ ‘희망의 배신’ 등 배신 시리즈를 낸 바버라 에런라이크 작가는 전미영 번역가와 짝을 이뤘다.

외국 저자들은 국내 번역본 출간 시 ‘어느 번역가로 지정해 달라’고 주문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 작가들이 특히 까다로우며,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도 이런 경우다.

김춘미 교수는 “해당 국가의 풍습, 사고방식, 삶의 자세를 모르면 오역이 나온다”며 “작가에 대한 애정과 성실함이 번역가에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페르소나#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번역가#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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