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新명인열전]1차산업 농업을 한국대표 관광산업으로 만든 ‘축제 행정의 달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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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신형순 김제시 축제팀장

김제시청 신형순 팀장은 14년 동안 지평선 축제 업무를 맡아 성공시킨 공로로 행정자치부의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됐다. 지역 축제 분야에서 행정의 달인에 뽑힌 건 그가 처음이다. 신 팀장이 전북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에 있는 지평선 축제의 상징 쌍룡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김제시청 신형순 팀장은 14년 동안 지평선 축제 업무를 맡아 성공시킨 공로로 행정자치부의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됐다. 지역 축제 분야에서 행정의 달인에 뽑힌 건 그가 처음이다. 신 팀장이 전북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에 있는 지평선 축제의 상징 쌍룡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8년 연속 대한민국 최우수 축제 선정. 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축제 선정’

전북 김제 지평선 축제가 거둔 성과다. 과거 한반도의 곳간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된 너른 들판을 빼고는 변변한 관광지 하나 없는 김제가 거둔 것이어서 더욱 돋보이는 실적이다. 3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선정돼 축제 심사를 졸업한 축제는 국내 1000여 개 지역 축제 가운데 ‘충남 보령머드축제’ ‘경북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경남 진주 남강유등축제’ 단 3개뿐이다.

지평선 축제의 성공에는 한 공무원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14년 동안 지평선 축제 업무를 맡아 온 김제시 신형순 축제팀장(행정6급·52)이다. 그는 행정자치부의 ‘지방행정의 달인’(문화관광축제 분야)으로 선정돼 16일 상을 받는다. 1차 산업인 농업을 관광산업으로 이끌어 낸 공로다. 축제 분야에서 행정의 달인이 나온 것은 그가 처음이다.

○ 지평선 축제 이끌어 온 축제의 달인

시작은 미약했다. 아니 참담했다. 1999년 온통 논밖에 없는 벽골제 제방 아래에 흙과 자갈을 채우고 천막 몇 개를 설치해 제1회 축제를 치러 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벽골제와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평야를 테마로 농경문화 체험 축제를 만들어 ‘농경문화 1번지’ 김제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취지였다.

첫 축제를 마쳤을 때 주민의 대부분인 농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 마당에 돈을 들여 축제라니. 미친 것 아니냐”, “허허벌판 논바닥에서 무슨 축제냐”라는 주장이었다. 당시는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농축산물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연일 농민들이 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때였다. 농민들은 “축제에 들어갈 돈이 있으면 농로를 포장하든지, 농기계를 사 달라”고 요구했다.

2000년 비용을 줄이기 위해 관 주도형 행사인 ‘시민의 날’을 폐지해 지평선 축제에 통합시키고 지역 인사가 대거 포함된 축제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는 트로트 가수 초청 등 공연 행사 대신 농민들이 평소 해 오던 농사일을 프로그램으로 꾸몄다. ‘이 힘든 농사일을 누가 제 발로 찾아와 하겠느냐’라고 반발하던 농민들도 관광객들이 농사 체험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민족의 DNA에는 농촌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잠재해 있고 농민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주민의 참여를 더 끌어내고 프로그램을 차별화하기 위해 김제문화원의 자료를 뒤져 과거 마을 단위로 전해져 오다 명맥이 끊긴 민속놀이를 찾아냈다. ‘쌍룡놀이’ ‘입석줄다리기’ ‘만경들노래’를 고증을 통해 되살려 민속놀이 보존회까지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신 팀장은 축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직접 변론서를 작성해 가며 특허청의 업무표장등록을 받아 냈다. 이를 계기로 김제시는 ‘지평선’이라는 농축산물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지평선 축제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지평선 쌀’ ‘지평선 한우’ ‘지평선 파프리카’ ‘지평선 감자’ ‘지평선 포도’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저항도 많았지만 개막식 의전 행사를 없애고 바가지요금과 개성 없는 음식의 원인으로 꼽히던 기업형 난장을 폐쇄하는 대신 지역 부녀회가 음식 부스를 운영토록 했다.

전국 최초로 축제 전문 해설자원봉사제를 운영하고 천년고찰 금산사에 템플스테이를, 한학을 가르치는 학성강당에는 선비문화체험 스테이를 제안해 연계 상품으로 운영했다. 축제 기간 숙박난을 해결하기 위해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지평선 사랑방’으로 이름 지어 운영하고 남포들녘정보화마을 등 정보화마을들을 연결해 농촌 관광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는 차별화된 상품 개발을 고민하던 끝에 들판에 널린 볏짚을 이용해 달걀꾸러미, 미니삼태기, 짚모자, 여치집 등을 개발했다. 지금은 농민들 스스로 ‘지평선 지푸라기 연구회’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 농업 관련 국제 행사 김제 개최 꿈

지평선 축제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은 ‘아궁이 쌀밥 체험’이다.

가족 단위로 작은 가마솥에 김제 지평선 쌀을 안치고 직접 장작으로 불을 때 밥을 지은 뒤 평상에 둘러앉아 먹는다. 반찬은 무료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밥에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 먹으면서 중년 이상 체험객들은 “어린 시절 먹던 밥맛을 되찾았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가마솥 밥 짓기는 지역의 자원을 살려 도시민들의 어린 시절 추억과 감성을 자극하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3년 동안 5000여 가족이 이 체험을 하고 갔다.

1700여 년 전 최대 규모로 축조된 수리시설이라지만 수문 옆에 큰 돌 2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벽골제는 축제가 시작된 지 10년 만인 2009년 ‘벽골제 관광지’로 지정됐다. 시설 투자를 먼저 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여타 관광지와는 다르게 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이 찾으면서 관광지로 부상한 것이다.

그는 지금 전국 자치단체와 대학 관광학부에서 지역 축제 성공 비법을 강의하는 유명 강사가 됐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한다. 지평선 축제가 한 해 100만 명 넘는 인파가 몰리는 축제로 성장했지만 더는 관광객 수에 연연하지 않고 1만 명이 오더라도 제대로 즐기고 돌아가서 주변에 가자고 권유하고, 다시 오고 싶어 하는 축제를 만드는 게 꿈이다.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주민 소득과 연계해 축제가 주민들의 살림에 보탬이 되고 주민들이 축제를 통해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람이다. 김제 만경평야에서 열리는 축제를 새만금 간척지까지 확장시켜 지금보다 더 넓고 아스라한 지평선도 보여 주고 싶다.

“농업박람회나 농업 부문 국제회의가 왜 서울 한 가운데 호텔이나 전시장에서 열려야 합니까. 세계적인 농업 관련 행사를 벼 농업의 메카이자 농경문화 1번지인 김제에서 여는 게 제 마지막 꿈입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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