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고도비만수술, 어쩌다 ‘미용수술’로 몰렸나

  • 입력 2015년 11월 10일 11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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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세포 변성돼 정석 다이어트만으론 체중감량 좌절, 감량성공률 0.8% … 복강경수술 시행후 사망률 0.08%

“고도비만수술은 절대 미용수술이 아닙니다. 이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회장 최승호)가 지난 6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고도비만 수술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고도비만수술은 2018년 건강보험에 포함될 예정이며, 학회는 수술의 효용성과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내년 고도비만수술의 건강보험 적용을 앞두고 국내 고도비만 치료 분야의 석학들이 한 자리에서 베리아트릭 수술의 효용성과 안전성을 조망했다. 베리아트릭은 고대 그리스어로 ‘체중을 개선·치료한다’는 의미다. 국내서는 통칭 ‘고도비만수술’, ‘병적비만수술’로 정의한다.

고도비만수술로는 △위밴드수술 △위우회술 △위절제술 등이 포함된다. 이들 수술은 고도비만 환자들의 체중을 이상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니라 대사적으로 건강한 체중을 만드는 게 목표다.

고도비만은 지방세포가 심하게 변성돼 정상으로 복귀하기 어려운 상태다. 신체가 비만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계점에 도달, 비만에 의한 각종 질환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태이거나 이미 관련 질환이 발생한 상황이다. 단순히 ‘쯔쯔,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대’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치료는 물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김용진 대한비만외과대사학회 홍보위원장(순천향대서울병원 외과)은 “비만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왜 살을 빼고 유지하는 게 어려운지 이해해야 치료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고도비만은 다른 성인병과 마찬가지로 재발이 잦고 비가역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잠시 다이어트에 성공해도 다시 이전 상태로 되돌아갈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최근 영국에서 비만한 성인 남녀 17만6000여 명을 9년간 추적한 결과 정상 체중으로 감량될 확률은 0.8%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 ‘라스트 헬스보이’에서 70㎏을 감량한 개그맨 김수영 씨의 경우 ‘방송이니까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감량 이후다. 흔히 말하는 ‘요요현상’을 무시할 수 없다. 김 씨도 최근 약간의 요요현상을 겪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학회 관계자들은 고도비만 환자에서 나타나는 요요현상은 막을 수 없는 일종의 ‘생물학적 적응’이라고 설명했다. 체중을 감량한 뒤에는 지방축적능력의 변화나 렙틴 저항성 등 생물학적 적응기전으로 다시 살이 찌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1950년대 처음 존재가 밝혀진 ‘비만유전자’ 탓이다. 인류는 후생 유전적으로 살이 찌는 데 유리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더라도 체중이 감소할 때에는 근육도 더불어 빠지고 요요현상을 맞으면 빠진 근육 자리로 지방세포가 채워진다.

따라서 비만은 예방하는 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비만이 심각한 질병임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야 한다.

김 위원장은 “일반적인 체중감량 방법으로 치료가 어려운 고도비만 환자에겐 고도비만수술이 현존하는 치료법 중 가장 효과적”이라며 “현재 비만 관련 내과학회를 비롯해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고도비만 치료를 위한 진료 가이드라인에 비만수술이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상 환자가 명기되는 것은 비만수술의 효용성을 반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도비만수술은 막연히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나 그렇지 않다. 안수민 비만대사외과학회 학술위원장(한림대 외과)은 “2000년 이후 10여년 사이 암을 포함한 고난도 수술이 복강경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복강경수술이 발전하며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분야가 고도비만수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복강경 적용이 보편화된 2003년 이후 고도비만수술로 인한 사망 위험은 0.08%로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적절한 대상에게 수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 클리닉에서는 돈이 되는 만큼 조금 통통한 정도의 사람에게도 수술을 감행하지만 분명 ‘수술 대상’이 존재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을 기준으로 위밴드수술을 포함한 고도비만 수술치료 대상자로 △체질량지수 35 이상이거나 30∼35사이의 비만 관련 질환을 동반한 경우 △수술 이외의 방법으로 비만치료에 실패한 경험이 있고 쿠싱증후군, 갑상선기능저하증 등 비만을 유발하는 내분비질환이 없는 경우 △체중 감량 의지와 수술 이외 보존적인 치료를 시도했던 경험이 있어야 하고 △18∼60세로서 심각한 정신과적 병력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회는 향후 BMI보다 환자가 갖고 있는 동반질환 정도를 기준으로 수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용진 위원장은 “한국인은 20~30대 젊은층에서 당뇨 발병률이 높아지고, 심혈관 합병증이 일찍 발병하고 있다”며 “단순히 체중이 아니라 질병을 기준으로 삼는 방향으로 진료지침도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서 고도비만수술을 보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지난해 고(故) 신해철 씨 사망 사건이 마치 고도비만수술 때문인 것처럼 알려졌기 때문이다. 위밴드수술은 물론 고도비만수술 전체에 대한 국민정서는 나빠졌다. 몸매관리를 하지 않으면 ‘당연한 자기관리’를 포기하는 사람으로 무시하는 분위기에서 고도비만수술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게을러서 수술로나 뺀다’고 비난하는 시각이 생겼다.

학회는 지난해 무분별한 고도비만수술 등에 통감한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오해를 풀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사고 이후로 위밴드수술 등 고도비만수술 건수는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다. 고도비만 자체가 당장 오늘내일 하는 위독한 문제가 아니니 수술을 예약했다가 취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승호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장(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은 “고도비만수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며 “수술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조차 이를 꺼리게 만드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 20세 이상 성인 중 고도비만 인구는 140만명, 전체의 약 4%를 차지하고 있다.

최 회장은 “국민 정서상 비만은 스스로 생활습관을 관리하지 못한 문제로 여기는 만큼 국가가 지원하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라며 “하지만 암도 생활습관에서 나온 병이지만 이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이어 “이같은 상황에서 국민에게 고도비만수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기존에 발생한 문제를 하나하나 개선해나가겠다”며 “신해철씨 사건과 관련해 주무학회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이같은 문제가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윤리위원회를 신설한 만큼 실질적인 안전성 프로그램 강화 차원에서 세부전문의 및 인증의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취재 = 정희원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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