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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Travel]이슬람과 기독교… 분쟁의 역사 기록중인 그곳,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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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Travel]이슬람과 기독교… 분쟁의 역사 기록중인 그곳, 예루살렘

이스라엘=조성하 전문기자입력 2015-10-28 03:00수정 2015-10-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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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종교 역사를 아우르는 여행
감람산(올리브산) 정상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성안 올드시티의 동쪽. 성벽 너머로 중앙에 황금빛 바위돔 사원이, 그 왼쪽에 이슬람성지 알아크 사원(모스크)이 보인다. 유대신앙의 중심인 성전도 바로 모스크지역에 있었다. 현재 성벽은 470여년 전 오스만제국이 쌓은 것이다. 예루살렘(이스라엘)=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예루살렘. 근 3000년 역사의 성곽도시다. 이곳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다윗 왕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모아 통일왕국을 세운 뒤 도읍으로 정하면서다. 하지만 그가 지은 다윗 성은 예루살렘 성의 동남쪽에 있고, 현재의 예루살렘 성은 아들 솔로몬이 기원전 959년에 처음 쌓았다. 하느님의 성전도 함께. 하지만 그 성은 기원후 70년 로마군에 완벽하게 파괴됐다. 현재 성곽(평균 높이 17m·길이 4km)은 470여 년 전 오스만제국이 쌓은 것이다.

이 성의 역사는 유대민족의 수난사다. 6세기엔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돼 50년 만에 바빌론유수로부터 귀향한 유대인 손으로 재건된다. 로마에 의한 파괴는 유대민족의 독립항쟁에 대한 보복. 이때 이스라엘은 나라마저 해체돼 유대민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1900년간의 기나긴 방랑, 디아스포라(Diaspora·고향을 떠난 유대인의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이후 가나안 땅은 팔레스타인 차지가 됐다. 그리고 4세기 로마몰락 후엔 동로마(비잔틴)제국에, 다시 이집트와 시리아의 술탄(군주) 살라딘(1138∼1193)의 지배를 받는다. 십자군전쟁(1096∼1272년까지 모두 8차례) 때는 기독교와 이슬람, 두 유일신 종교의 전장으로 변한다. 그 기간에 기독교가 예루살렘을 장악한 건 89년(1099∼1187년)뿐. 1917년 오스만제국이 몰락할 때까지는 꾸준히 이슬람왕조가 지배했다. 그런 가나안에 유대민족이 나라를 세운 건 1948년. 1917년부터이때까지는 영국이 위임 통치 했다.


성도(聖都) 예루살렘은 해발 750m의 작은 산을 온통 뒤덮은 형국이다. 주민은 80만 명. 7개의 문과 34개의 망루를 가진 길이 4km의 성벽은 그 산정을 둘러싸고 있다. 성안은 ‘올드 시티’라고 불리며 종교별로 네 구역(유대교 기독교 아르메니아정교 이슬람교)으로 나뉜다. 올드시티를 보려면 키드론 계곡 건너 동쪽의 해발 800m 감람산(감람은 올리브)에 오르면 된다. 이곳은 예수가 자주 기도하던 곳. 거기선 예루살렘 성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하지만 거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모리아 산(유대교 기독교에선 성전산) 위에 지은 황금빛 ‘바위 돔(Dome of Rock)’과 알아크사(메카 메디나에 이은 이슬람의 세 번째 성지) 등 두 개의 이슬람 사원, 즉 모스크다. 워낙 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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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루살렘이 다시 시끄럽다. 9월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모스크 출입통제를 강화하면서다. 국제법상 예루살렘은 동서로 나뉘어 서예루살렘만 이스라엘 영토다. 모스크와 아랍인 거주구역이 있는 동예루살렘은 요르단 영토다. 그러나 제3차 중동전(1967년의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후 이제껏 지배하고 있다. 모스크가 있는 모리아 산이 유대교에겐 믿음의 중심인 성전산(하르 하바이트)이다. 모스크는 로마군에 파괴된 성전의 폐허 위에 7, 8세기에 건립됐다.

요르단은 동예루살렘을 애초부터 팔레스타인의 거주지로 내주었다. 그리고 아랍계 이슬람신자들은 지금도 매일 제3의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을 찾아 기도한다. 그런데 점령군인 이스라엘이 출입을 통제하니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사원으로 통하는 길목에선 이스라엘의 무장경찰이 일일이 검문한다.

지난달 나는 알아크사 모스크를 찾았다. 그 길은 예루살렘 성의 ‘통곡의 벽’ 옆에 가설한 통로형태 다리로 이어졌다. 아래를 보니 늘 그렇듯 유대인들이 벽과 면한 채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이 벽은 유대민족이 바빌론유수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을 재건할 당시 다시 세운 성벽.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파괴하며 이 성벽만은 남겨 두었다. 훗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할 증거물로.

검문소는 이 다리 끝에 있다. 모스크에 들어가려면 누구든 이스라엘 보안군의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한다. 반입금지 물품엔 성경과 십자가, 묵주도 포함된다. 불필요하게 이슬람교도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과민반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알아크사 모스크는 예루살렘 성내에서 유일한 ‘이슬람 해방구’다. 그래서 여기만큼은 팔레스타인이 주인이다. 그들은 이곳에 유대인의 출입자체를 거부한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유대인은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이날 내 앞에 한 유대인이 들어갔다. 그러자 모스크 옆에 모여 있던 팔레스타인 여인 200여 명이 일제히 고함치며 야유했다. ‘알라 후 아크바’. ‘알라가 더
위대하다’는 말이다. 한 여인은 그가 떠날 때까지 20여 분을 쫓아다니며 고함쳤다.

통곡의 벽에서 한 소년이 기도하고 있다. 이 벽은 기원전 538년 바빌론유수에서 귀향한 유대인이 다시 쌓은 예루살렘 성의 두 번째 성벽이다.


감람산에서 보면 성벽 왼쪽에 검은 장막을 친 부분이 보인다. 손상된 부분이다. 하지만 보수공사는 언감생심. 팔레스타인의 반대 때문이다. 이유가 놀랍다. 이스라엘에 공사를 맡기면 그걸 빌미로 모스크를 파괴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의 벽 서쪽 지하에서 예수 생존 당시(기원후 30년경) 성벽과 길, 계단이 발견됐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군은 발굴을 계속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반대했다. 그 과정에서 모스크가 파괴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에서의 갈등은 늘 이런 식이다. 최근의 갈등은 팔레스타인의 테러위협이 높다며 이스라엘 정부가 알아크사 모스크 옥상에 올라가 작전을 펼치면서 비롯됐다.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사태는 지난주 미국과 요르단 간에 이뤄진 ‘긴장완화 합의’로 진정국면을 맞았다.


이스라엘=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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