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도박은 승부조작의 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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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구단인 삼성과 요미우리가 도박으로 나란히 홍역을 앓고 있다. 삼성은 주력 선수 세 명의 해외 원정 도박이 문제다. 알려진 판돈만 수십억 원이다. 요미우리에서는 소속 선수 3명이 일본 야구 경기 등을 놓고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다. 프로야구 최고 잔치인 가을 축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동병상련이다.

두 구단의 처지는 비슷하지만 대응 방식은 사뭇 다르다. 삼성은 언론을 통해 도박 사실이 알려진 뒤 닷새가 지나서야 문제의 선수들을 한국시리즈에서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세적 대응이었다. 그런데 요미우리는 구단이 먼저 나서 사실을 발표했고 “야구사를 더럽혔다”며 고개를 숙였다. 일본야구기구(NPB)는 조사위원회를 가동해 발본색원할 기세다.

물론 일본 쪽 상황이 더 심각한 건 사실이다. 야구 선수가 야구 경기를 놓고 도박을 했기에 ‘승부조작’ 가능성도 농후하다. 조직폭력배까지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 개연성은 더 크다. 일본은 아마도 1969년 불거진 ‘검은 안개’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대규모 야구 도박 사건에 유명 투수와 타자들이 관련됐고, 배후에 조직폭력배가 있었다. 사건 전모가 밝혀진 뒤 19명의 선수가 야구계에서 추방되는 전례 없는 처벌을 받았다. 그 기억이 아직 선명한 것이다.

반면 삼성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번 해외 원정 도박을 선수들의 개인적인 일탈로만 보고 있다. 리그와 팀의 명예를 훼손한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이하게 볼 일만은 아니다. 스포츠에서 도박은 승부조작의 싹이다. 메이저리그 최다 안타의 주인공인 피트 로즈는 선수 시절(1963∼1986) 각종 도박을 즐겼다. 감독이 된 뒤에는 자신의 팀 경기에 돈을 걸어 승부조작 혐의가 뒤따랐다. 그는 여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하고 있다. 프로농구 전창진 전 감독이 승부조작 의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것도, 그가 평소 도박을 즐겼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아무리 선량한 선수라도 도박에 중독되면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고, 도박빚 등으로 꼬투리를 잡히면 그들로부터 승부조작을 강요받는다. 승부조작의 기본 원리다. 이번 삼성 선수들도 해외 원정 도박 때 조직폭력배와 거래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단순 일탈로만 볼 문제가 아닌 것이다.

2008년 온라인 도박 사건에 프로야구 선수 26명이 연루됐는데 삼성 선수 한 명만 리그로부터 징계를 받는 선에서 조용히 무마됐다. 그러다 2011년에는 프로야구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도박에 관대한 문화가 승부조작을 키웠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만큼 관대함의 결과는 치명적이다.

대만 프로야구는 반면교사다. 대만은 1997년 11개 팀으로 양대 리그를 운영할 만큼 최고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도박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검은 독수리’ 사건 등 승부조작 파문이 끊이지 않았다. 1995년 이후 팬들의 신뢰를 급격히 잃었고, 현재는 4개 구단으로 축소돼 리그의 존립마저 위태롭다.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 규모가 30조 원을 넘어섰다. 선수와 지도자, 관계자들을 향한 ‘승부조작의 유혹’도 커지고 있다. 이번에도 도박 사건을 관대하게 처리하면 언제 또 승부조작으로 확대될지 모른다. 승부조작의 싹인 ‘도박하는 문화’를 없애야 프로야구가 산다.

윤승옥 기자 touch@donga.com
#도박#승부조작#삼성#요미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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