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모니’ 뵈러 독일서 왔어요” 금발의 인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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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괴벨씨 나눔의 집서 동고동락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 마당에 세워진 소녀상 앞에서 웃고 있는 이네스 괴벨 씨(오른쪽)와 강일출 할머니(87). 나눔의 집 제공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 마당에 세워진 소녀상 앞에서 웃고 있는 이네스 괴벨 씨(오른쪽)와 강일출 할머니(87). 나눔의 집 제공
“위안부는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이며, 영원히 사과해야 할 범죄입니다.”

20일 경기 광주시 위안부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만난 독일 여대생 이네스 괴벨 씨(21)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괴벨 씨는 1일부터 약 석 달간의 일정으로 이곳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대에 다니고 있는 그는 지난해 한국 여행 중 ‘나눔의 집’을 방문한 친구로부터 처음 위안부 문제를 들었다. 평소 전범국이던 독일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후 인터넷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처참한 모습을 접했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세정용 대야가 놓인 위안소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대할 수 있나 분노도 치솟았고요.”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참했던 사진과 주먹을 불끈 쥐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고 그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한국에 갈 결심을 했다”며 “할머니들과 생활해 보며 역사를 더 배워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눔의 집에서 석 달간 진행되는 인턴십 프로그램은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관련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틈나는 대로 나눔의 집 역사관에 전시된 물품과 기록 등을 보며 ‘위안부 역사’도 공부한다. 한국에 오기 전에도 공부를 했지만 이곳에서는 할머니들의 생존 당시 육성이 담긴 테이프, 사진 등을 활용해 산 공부를 하고 있다. 다음 달부터는 이렇게 공부한 것을 토대로 대외홍보 업무를 담당한다. 정호철 나눔의 집 국제활동팀장은 “할머니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첫 한 달 동안은 할머니들의 생활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할머니 생활관을 청소하고, 식사와 세면 등을 돕고 산책도 같이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할머니들과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젊은 시절 영혼과 육체를 난도질당했던 할머니들은 지금도 각자 방에서 식사를 할 정도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한 편. 하지만 이역만리에서 할머니들을 보고 싶어 왔다는 괴벨 씨의 사연을 듣고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치 자신들의 손녀딸처럼 손짓 발짓을 해가며 ‘아가’라고 부르고, 숨겨둔 사탕과 떡을 나눠 줄 정도로 괴벨 씨를 귀여워한다고 한다.

괴벨 씨는 할머니들을 “할모니”라고 부른다. 한국말이 서툰 그는 ‘할모니’라고 발음하고, 독일어로 일기를 쓸 때도 이를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은 ‘halmoni’로 쓴다.

그는 “말은 안 통하지만 할머니들의 눈빛을 보면 얼마나 상처를 깊게 받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말할 땐 입술과 턱을 떨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 그는 사죄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 “부끄러운 범죄에 대해선 자국의 역사라도 미화해선 안 되며, 외면해서도 안 된다”며 “일본은 할머니들을 찾아와 진심으로 위로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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