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의 한국 블로그]미술작품 감상의 즐거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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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포니
내가 태어난 미국 찰스턴은 옛날부터 미술의 가치를 중시했던 곳이다. 길거리, 공원, 광장 등 어디에서든 미국 내전 전의 독특한 건축에서 현대 화가의 미술관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림, 조각, 건축, 공예 등 미술 작품들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이곳에선 미술을 쉽게 접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젊은층이 많이 가는 홍익대, 대학로 등에 길거리 미술이나 조각품, 작은 미술관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공공장소에서는 미술관이나 야외 미술 작품 등을 많이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한국 미술을 접하고 싶은 마음에 최근 경기 과천시의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다. 황규백 화가전이 열리고 있었다. 보통 현대 미술은 초현실주의적이고 추상적이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비판을 받는다. 나도 그런 비판을 이해할 수 있다. 현대 미술 작품 전시관에 갈 때마다 때때로 이해할 수 없거나 ‘나도 저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불만스러운 작품도 많았다. 그러나 모든 현대 미술이 그런 것은 아니다. 황규백 화가전이야말로 내가 현대 미술에서 가장 좋아하는 특징이 있는 전시였다. 획기적이고 독특한 스타일이지만 훌륭한 기술을 습득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작품 속에는 바이올린이나 우산 등의 소품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는데, 평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 속에선 느낄 수 없는 미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미술관을 나서며 무척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고 한국 현대 미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미술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직접 작품 활동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얼마 전 서울 이태원의 잔쿠라 아트스페이스에 가서 인체 드로잉 이벤트에 참여했다. 사실 나는 그림 실력이 거의 없지만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가보았다.

작은 스튜디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비키니를 입은 미녀 모델에게 집중하며 몇 명은 바닥에 앉아서, 몇 명은 뒤에 서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연필, 목탄, 수채화 물감, 그리고 한국의 전통적인 붓과 먹을 이용해 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참석자들의 연령대도 폭넓었다. 덕분에 드로잉도 다양했다. 모델은 두 시간 동안 열심히 포즈를 취했고 한국인, 외국인들이 나란히 모여 조용히 그림을 완성했다.

시간이 끝날 때쯤엔 팔이 다 아파왔다. 연필은 무뎌졌다. 모델이 15분마다 포즈를 바꿔 나는 7개의 드로잉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예상한 것보다 꽤 괜찮아서 정말 놀랍고 즐거웠다. 두 시간 동안 너무 집중해서 정신적으로 지쳐갔지만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잔쿠라를 나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미술의 매력을 새삼 다시 느꼈다.

이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구나 예술 문화에 기여할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기에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나처럼 실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 명상처럼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자기가 만든 것을 가질 수 있으니 명상보다 더욱 보람이 있다. 명작을 못 그려도 기분이 매우 좋을 것이다.

미술은 인간의 깊은 상상력과 감정을 강렬한 묘사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된다. 미술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반성할 수 있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대도시 서울에서 미술은 여러 나라 사람을 화합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미술은 각국의 문화를 초월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한국화는 독특한 한국의 특성을 가지지만 그 특유의 어려운 기법과 우아함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서울에는 훌륭한 미술가가 많고,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미술을 느끼고 경험할 만한 곳이 곳곳에 있다. 내가 방문한 황규백 화가 전시나 잔쿠라 아트스페이스 등이 그 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요소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서울의 여러 공공장소에 야외 미술 작품, 미술관, 전시회, 참여 프로그램 등을 늘려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미술에 관심을 갖게 하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좋은 영감을 심어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천재인 화가는 없다. 열심히,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뿐이다. 노력을 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시도해봐야 한다. 주변을 관찰하고 또 느껴보면서 말이다. 평소 주변의 미술 작품을 잘 찾아서 감상하면 내면에 놀라운 변화가 생길 것이다.

※ 벤 포니 씨(28)는 2009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 왔으며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있다.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이끌어낸 고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증손자다.
벤 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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