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365일, 늘 그 자리에서 늘 새롭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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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영갑 10주기 개인전
섬의 자태에 매혹돼 생의 절반 던져 찍고 또 찍기를 수천번
손에 힘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자연의 속살 붙잡으려 맴돌아

가지 새를 텅 비운 채 쉬는 계절의 나무 둥치를 창틀 삼아 중산간의 볕과 그늘을 건너다봤다. 김영갑 작가는 “나무는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중산간 오름 모두를 이해해 사진으로 표현하겠다는 조급함에 허둥댔다. 병을 얻어 침대에 눕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같은 과오를 범했을 거다”라고 썼다. ⓒ KIMYOUNGGAP
가지 새를 텅 비운 채 쉬는 계절의 나무 둥치를 창틀 삼아 중산간의 볕과 그늘을 건너다봤다. 김영갑 작가는 “나무는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중산간 오름 모두를 이해해 사진으로 표현하겠다는 조급함에 허둥댔다. 병을 얻어 침대에 눕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같은 과오를 범했을 거다”라고 썼다. ⓒ KIMYOUNGGAP
제주도에서의 삶이 마냥 또똣(‘따뜻’의 제주 사투리)하지만 않다는 것은 그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간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럭저럭 알려졌다. 섬 생활은 당연히 고단하다. 그 고단함을 감수하고라도 대도시에서와 다른 삶을 선택하려는 사람이 적잖은 까닭은 뭘까.

아마 ‘자연’일 거다. 30년 전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 정착한 사진작가 김영갑 씨(1957∼2005·사진)도 그랬다. 3년 정도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작업하던 그는 뷰파인더 너머로 마주한 자연에 매혹돼 삶 전체를 던져 안겼다. 그리고 20년 뒤 그 품속에서 루게릭병으로 숨을 거뒀다.

27일부터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전은 김 씨의 10주기를 맞아 처음 열리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48년 생애 절반 가까운 시간 동안 오로지 제주도의 바다, 산, 섬, 들, 구름, 풀, 사람을 기다리고 바라보며 프레임에 녹여 담은 그의 작품 수천 점 중 70여 점을 선별했다. 틈틈이 적은 글을 사진과 함께 실은, 전시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책도 출간됐다. 글귀에도 사진만큼 지긋하고 은근한 기다림의 무게가 얹어져 있다.

“내가 붙잡으려는 건 시시각각 변하는 빛, 바람, 구름, 안개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 KIMYOUNGGAP
“내가 붙잡으려는 건 시시각각 변하는 빛, 바람, 구름, 안개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 KIMYOUNGGAP
“울음으로 시작한 세상, 웃음으로 끝내기 위해 하나에 몰입했다.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소망했다. 흙으로 돌아갈 줄 아는 생명은 자기 몫의 삶에 열심이다. 만 가지 생명이 씨줄로 날줄로 어우러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카메라를 유일한 친구로 삼고 홀로 몇 달 인적 뜸한 어딘가를 떠돌아보면 알 수 있다. 사진은 기다린 만큼 답한다. 그건 장비와 기술이 해결해주는 문제가 아니다. 기다린 만큼 보이고, 보인 것의 지극히 일부만이 기적처럼 붙들려 남는다.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피사체의 품속으로 김 씨가 생활 터전을 옮긴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했다.

“같은 곳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해 찾아가도 늘 새롭다. 삼백예순다섯 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도 갈 때마다 새롭다. 자연은 늘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경이로움으로 충만하다.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자연을 맴돈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동안은 아무리 작은 욕심이라도 모두 버려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이 아닌 꼭꼭 숨은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중산간 초원에 서서 사시사철 억센 바람 맞고 신명나게 춤추는 억새를 바라보며 “바람이 떠미는 방향으로 눕지 않는” 억새를 닮으려 했던 김 씨는 제주도에 머물기 시작한 지 14년째인 42세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통증을 참으며 작업을 계속하는 한편으로 방치된 폐교를 빌려 사진갤러리로 가꿔낸 그는 2005년 4월 초 어느 오후 조수에게 “35mm 필름 쓰는 작고 가벼운 카메라 하나를 새로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제 손에 힘이 없어. 중산간에 나가기 어려워지면 정원에 앉아 이곳 억새를 찍을 거야.”

한 달 뒤 김 씨는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돼 사망했다. 9월 28일까지. 02-733-1981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사진작가#김영갑#10주기#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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