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인사이드] 劉의 침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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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비난에도 국회법에 묵묵부답
靑 거부권땐 재신임 승부수 가능성

“상 받을 줄 알았는데 벌 받고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사진)가 최근 동료 의원들과 식사 도중 했다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최대 개혁 과제로 꼽았던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함께 처리했던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 시비에 휩싸여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의 ‘표적’이 되고 있는 상황을 토로한 것. 발언은 농담조였지만 답답한 심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유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 논란에 대해 철저히 말을 아끼고 있다. 기자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딱 부러지게 말하는 평소 스타일에 비춰 보면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친박 진영이 자신을 겨냥해 사퇴 압박을 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시빗거리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속내도 엿보인다. 그렇다고 자신이 주도했던 국회법 개정안이 강제성이 없다는 생각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대신 그는 담담하게 원내 현안을 챙기고 있다. 23일 정부의 하반기 경제 운용 방향을 보고받았고,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해 야당을 어떻게 설득할지 논의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라 공무원연금법과 연동돼 있는 사학연금법도 손질하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가급적 거부권 행사 시기를 늦추긴 하겠지만 철회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거부권 행사가 현실화하면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친박계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계기로 유 원내대표 낙마에 총공세를 펼 태세다. 유 원내대표가 버티고 있으니 당정청 채널이 꽉 막혔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정면충돌을 막으려 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거부권이 행사되더라도 재의결에 부치지 않고 법안의 자동 폐기를 유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친박계가 유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한다면 유 원내대표는 “재신임을 묻겠다”며 맞불을 놓을 태세다.

일부 친박 의원은 ‘유승민만 아니면 된다’는 강경한 분위기다. 하지만 친박계 내에서도 분위기가 미묘하게 다르다. 당 관계자는 “재신임 표 대결로 가면 유 원내대표가 이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런 내전(內戰) 자체가 메르스 사태로 속상한 국민에게 볼썽사나워 보인다는 점이다.

이현수 기자 soo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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