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톡 쏘는 맛 ‘트릭플레이’…비매너일까? 센스일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6월 22일 05시 45분


LG 정찬헌. 스포츠동아DB
LG 정찬헌. 스포츠동아DB
지난 KIA-LG전 양석환 고의낙구성 플레이
룰 보장한 한도내 영리한 플레이 승리 견인
두산 노경은 커트플레이 잊어버려 롯데전 패
다저스 앤리케 모션으로 끝내기 보크 유도


야구는 잘 치고 잘 받고 잘 던지고 달리기까지 잘하면 좋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센스다. ‘야구=멘탈게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센스 넘치는 플레이가 18∼19일 KBO리그와 메이저리그에서 다양하게 쏟아졌다. 야구는 경기에 참가하는 구성원들이 주어진 상황과 룰을 얼마나 잘 이용해 상대를 불리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드느냐에 따라 승패가 크게 달라진다. 이 가운데 트릭플레이는 야구라는 요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향신료와 같다. 당한 팀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톡 쏘는 맛을 안긴다.

● LG 양석환의 고의낙구? 칭찬해야 할 야구센스?

시즌 행보가 무거웠던 LG는 16∼18일의 KIA와의 잠실 3연전에서 2승을 거둬 한숨을 돌렸다. 18일 KIA를 접전 끝에 5-3으로 따돌린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날 LG를 살린 것은 3루수 양석환의 판단 하나였다.

0-0이던 6회초 KIA 공격. 선두타자 나지완이 몸에 맞은 공으로 살아나가자, KIA 벤치는 발 빠른 고영우를 대주자로 투입했다. 두 팀의 마운드가 타자를 압도하는 팽팽한 투수전이어서 그 주자의 홈 귀환 여부가 승패의 갈림길이라고 봤다. 후속타자 이범호의 타구는 3루 쪽 높은 플라이. 양석환은 이 공을 잡을 듯하면서 시간을 끈 뒤 떨어트렸다. 트릭플레이였다. 고영우를 1루에 묶어놓은 양석환은 텅 빈 2루에 던져 포스아웃을 시켰다. 기록은 3루수 땅볼.

KIA 응원석에선 야유가 나왔다. 양석환이 룰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아니다. 양석환은 룰이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 영리한 플레이를 한 것이다. 내야플라이 타구로 아웃카운트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수비 측에서 주자를 선택했다. 그 덕분에 발이 느린 이범호는 김주형의 2루타 때 홈을 밟지 못했다.

참고로 이날 양석환의 플레이는 고의낙구가 아니다. 룰 6.05조 l항은 ‘무사 또는 1사에 주자 1·2루, 1·3루 또는 만루일 때 페어의 플라이볼 또는 라인드라이브를 고의로 떨어트렸을 경우 볼 데드가 되어 주자는 원래의 베이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정했다.

고의로 떨어트리는 행위가 바로 고의낙구다. 인필드플라이 룰은 여기에서 탄생했다. 룰 2.40으로 나와 있는 인필드플라이 룰은 다음과 같다. ‘무사 또는 1사에 주자 1·2루 또는 만루일 때 타자가 친 것이 플라이볼이거나 내야수가 평범한 포구로 잡을 수 있을 것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투수, 포수와 내야에 자리 잡은 외야수는 내야수가 된다. 심판은 타구가 명백히 인필드플라이라고 판단할 경우 주자를 보호하기 위해 인필드플라이를 선언해야 한다’고 정했다. 수비 측에서 고의낙구로 병살을 유도하는 것은 비신사적 행위라 판단해 탄생한 것 인필드플라이 룰이다. 최초의 인필드플라이 룰은 요즘과 달라 오직 1사 1루 상황만 가능했다.

● 두산의 실패한 커트플레이, LG의 성공한 트릭 견제구

19일 잠실 롯데-두산전 9회가 하이라이트였다. 2-2로 팽팽하던 9회초 롯데 공격. 두산 마무리 노경은이 마운드를 지킨 가운데 롯데가 2사 후 기회를 잡았다. 연속안타로 만든 2사 1·3루서 롯데가 움직였다. 두산 포수 최재훈은 2루로 향하는 1루주자 황재균을 잡기 위해 공을 뿌렸다. 그러나 두산의 키스톤콤비는 어느 누구도 2루를 커버하지 않았다. 중전안타를 친 것처럼 포수의 송구가 외야로 빠져나갔다. 그 틈을 타고 3루주자 아두치가 홈을 밟았다.

기록상은 포수의 송구 실책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노경은의 판단이 더 아쉬웠다. 포수의 송구는 마운드 위로 낮게 날아갔다. 포수가 3루주자의 움직임을 견제하며 낮게 던졌다. 중간에서 투수가 이 공을 커트해 1루주자를 살려주더라도 3루주자를 잡거나 실점을 막는 것이 두산 수비진의 약속된 플레이였는데, 노경은이 그것을 잊어버리면서 모든 일이 꼬였다.

18일에는 잠실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도 나왔다. KIA-LG가 1-1로 맞선 7회초 2사 2·3루였다. 브렛 필에게 적시타를 맞아 동점을 허용한 뒤 1루주자의 2루 도루까지 허용한 LG 수비진이 트랩수비를 시도했다. 정찬헌은 위장된 픽오프 플레이 때 2루에 견제구를 던지는 척했다. 이 순간 3루주자 김호령은 홈으로 움직였다. KIA 벤치에서도 기동력을 살려 점수를 내려고 했거나 아니면 3루주자의 판단 미스 가운데 하나지만, 트랩수비를 빛나게 한 것은 정찬헌의 절묘한 트릭이었다. 정찬헌은 2루로 견제 모션만 취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공을 홈에 던져 뛰어들던 3루주자를 잡고 불을 껐다.

정찬헌의 견제구 트릭은 2012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나왔던 삼성 포수 이지영의 플레이를 기억나게 했다. 당시 삼성은 2-1로 쫓기던 4회 2사 1·3루서 SK 박진만 타석에서 트릭 송구를 성공시켰다. SK 주자 이호준과 김강민이 딜레이드 스틸을 시도하자, 이지영이 2루에 송구하는 척하다가 3루로 던져 이호준을 잡았다. “주자는 항상 공에서 눈을 떼지 말라”고 배우지만, 마음이 급한 이호준이 그것을 보지 못하고 먼저 움직였다. 그 트릭플레이는 2012년 한국시리즈의 운명을 바꾼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LA 다저스 엔리케 에르난데스 선수(오른쪽). ⓒGettyimages멀티비츠
LA 다저스 엔리케 에르난데스 선수(오른쪽). ⓒGettyimages멀티비츠

● 시뮬레이션으로 끝내기 보크를 만들어낸 선수와 3루 코치박스의 탄생 전설

메이저리그에서도 19일(한국시간) 주자의 트릭플레이 덕분에 끝내기 결승 득점이 나왔다. 텍사스-LA 다저스전이었다. 0-0으로 팽팽하던 9회말 2사 3루서 다저스 대주자 엔리케 에르난데스가 상대 투수의 보크를 유도했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는 텍사스 우완투수 키오니 켈라를 상대로 에르난데스는 마치 홈으로 파고드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빤히 눈앞에서 보이는데 주자가 홈에 뛰어들려고 하자 당황한 켈라가 세트포지션에서 왼쪽 어깨를 움찔했다. 주심은 즉각 보크를 선언했다. 좀처럼 보기 드문 끝내기 보크였다.

에르난데스가 3루서 보여준 시뮬레이션 액션은 빌 제임스가 주장하는 3루 코치박스의 탄생 전설을 새삼 생각나게 했다. 제임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코치박스가 만들어진 것은 1880년대로, 찰스 코미스키가 감독을 맡았던 세인트루이스가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야구가 거칠었는데, 경기 도중 상대 선수에게 욕을 하는 것도 다반사였던 모양이다. 주로 선수가 코치 역할을 맡았는데, 3루 쪽에 나가 있던 주루코치 역할의 선수는 파울라인 근처를 오가며 상대 투수에게 욕을 퍼붓는 것이 중요한 업무였다. 상대 투수가 그 욕설에 발끈해 실수하기를 유도한 것인데, 이를 보다 못해 룰로 제한하기 위해 만든 것이 3루 코치박스였다는 것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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