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만남의 설렘, 둘로 된 한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크게 2장으로 구성된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김새벽(오른쪽)은 조감독과 여행객을, 이와세 료는 시청 직원과 마을 청년의 1인 2역을 연기한다. 인디스토리 제공
크게 2장으로 구성된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김새벽(오른쪽)은 조감독과 여행객을, 이와세 료는 시청 직원과 마을 청년의 1인 2역을 연기한다. 인디스토리 제공
11일 개봉하는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크게 두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연극으로 치자면 서막(序幕)에 해당하는 1장은 영화를 찍기 전 조사차 일본 나라 현 고조 시에 온 영화감독 태훈(임형국)과 조감독 미정(김새벽)이 주인공이다. 태훈과 미정은 시청 직원 유스케(이와세 료)와 마을 주민 겐지의 안내로 이틀 동안 마을을 둘러본다. 마치 낯선 일본 마을을 맞닥뜨린 관객들에게 고조 시가 어떤 곳인지 소개하는 듯하다.

2장은 1장의 태훈이 고조 시에서 영화를 찍었다면 나왔을 법한 이야기다. 오사카와 나라를 여행하던 혜정(김새벽)은 충동적으로 고조 시로 향한다. 고조 시에서 감 농사를 지으며 사는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와 기차역 근처 안내소에서 마주치고, 그와 마을을 여행하며 이틀을 보내게 된다. 1장에서 태훈과 미정이 들었거나 말했던 대사가 반복되고 둘이 만났던 사람이나 방문했던 장소가 다시 등장하며 두 이야기 사이의 연결 고리를 단단하게 한다.

처음 만난 혜정과 유스케 둘 사이의 의사소통은 그 자체만으로는 다소 무의미하지만 그 대화를 타고 흐르는 호감만큼은 선명하다. 차근히 마음을 쌓아올린 두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혜정에게 유스케가 다음을 약속하고 혜정이 유스케의 팔뚝 안쪽에 연락처를 적는 장면은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제목에 딱 맞춤한 낭만적 감정을 화면에 심어낸다.

두 가지 이야기를 펼쳐놓지만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고조 시 그 자체다. 오래된 카페에서 마시는 시원한 아이스커피, 아무도 없는 한여름 한낮의 골목길, 풍경 소리와 냇가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신사, 25년 된 폐교에서 듣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밤하늘로 번지는 축제날의 불꽃놀이까지. 정성스럽게 담아낸 마을 풍경은 고즈넉하면서도 관객을 화면 안으로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한여름…’은 일본 나라국제영화제 제작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됐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이자 영화의 공동 프로듀서인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사라소주’ ‘너를 보내는 숲’ 등을 연출한 일본의 대표적 감독으로, 고조 시에서 촬영한 ‘수자쿠’로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프로젝트에는 고조 시에서 영화를 촬영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좀 속 좁은 관객이라면 “고조 시 홍보 영화냐”고 투덜거릴 법도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기꺼이 그곳으로 떠나고픈 마음이 든다. 전체 관람가.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