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태원]아마추어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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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정치부 차장
하태원 정치부 차장
정부의 능력에 대해 ‘아마추어적’이라는 평가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집권한 노무현 정부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통령 당선을 예상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탓인지 캠프에는 베테랑 관료들의 참여가 적었고 ‘섀도 캐비닛’을 꾸린다는 것은 언감생심처럼 보였다.

초보 정부에 대한 우려가 기우(杞憂)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은 오래지 않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며 호기롭게 내놓은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비웃듯 서울 강남이 단군 이래 최대 부동산 호황을 누린 것은 결정판 격. 쌀과 비료를 건네고 금강산에 ‘캐시’를 쏟아부으면 북한의 핵실험도 막고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노무현 정부다.

아마추어리즘 논란은 이명박(MB) 정부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2008년 4월) 만찬 요리로 32개월짜리 몬태나산(産) 쇠고기 스테이크를 잘랐던 MB. 불과 한 달여 뒤 처연히 청와대 뒷동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읊조릴 운명에 처할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2012년 8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첫 독도 방문자가 됐지만 이후 한일관계는 사상 최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가 백년대계보다는 자신의 ‘레거시’에 집착한 아마추어적 접근이었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는 더 심각하다. 2007년 당내 경선 때부터 준비된 미래권력이었고 2012년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는 새롭게 캠프에 들어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인걸’이 넘쳐났던 정부의 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 노무현 정부엔 기꺼이 순장조를 자임한 ‘노빠’가 많았고, MB 정부엔 충성심은 약해도 전문성을 갖춘 테크노크라트로 버텼지만 현 정부에는 대통령 레이저 피하기만 남았다는 자조(自嘲)도 들린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는 현 정부의 대형재난 태세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고 당일 해가 저물 때까지 구조자, 실종자 수도 파악하지 못한 조직이 구조작업 총괄본부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였다. 국가안보실은 통일, 안보, 정보, 국방 분야는 몰라도 재난 컨트롤타워는 아니라는 황당한 면피의식을 보여줬고, 해양경찰청은 스스로 배를 빠져나온 승객 외에는 단 한 명의 인명도 구해내지 못하는 무능력의 극치를 드러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보는 참담함은 ‘국가 대개조’를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거창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나 탄식이 아닐 것이다. 주무 장관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던진 ‘개미 한 마리’의 메르스 방어선 통과를 들어 아마추어 정부 운운할 국민도 없다.

진짜 실망스러운 것은 확진환자 발생 18일 만에 24곳의 병원 명단을 공개하면서 무려 5곳에서 소재지나 병원 이름 오류를 양산하는 시스템의 붕괴 아닐까. 명단 정리 작업에만 나흘이나 걸렸다면서 이런 초보적 실수도 거르지 못한다면 아마추어란 표현을 쓰는 것도 민망하다.

나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아래 국가에 권리를 신탁하는 계약을 맺은 국민은 국가가 계약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지지를 철회할 권리도 갖는다. 국민보다 더 허둥대며 헛발질하는 나라의 명령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5000만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대통령은 다른 세계에 있는 듯 보인다. 세월호 1주기 당일 6·25 참전국 콜롬비아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남미행(行)을 택했던 박 대통령. 메르스 사태가 중대 기로에 처한 8일, 이번엔 방미 일정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
#메르스#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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