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서부의 유슈칸’으로 변해버린 日 피스오사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30일 2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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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大阪) 시 주오(中央) 구에 있는 피스오사카(오사카국제평화센터)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전시를 하는 지방 박물관이다. 오사카 시와 부가 절반씩 자금을 마련해 1991년에 설립했다. 1층 전시실에는 난징대학살, 조선인 강제연행 등과 같은 일본의 가해(加害)에 관한 자료를 모아놨다. 2층에는 태평양전쟁 시절 일본이 입은 피해인 ‘오사카 대공습’ 자료를 전시했다. 관람객 약 70%가 학생들이다.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공부를 하기 위해 주로 단체 관람한다.

하지만 일본 극우들의 눈에는 가해 자료들이 ‘자학사관(自虐史觀)’을 조장하는 눈엣가시로 비쳤다. 2011년 선거에서 극우 성향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씨와 마쓰이 이치로(松井一郞) 씨가 각각 시장과 지사로 뽑히자 극우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결국 피스오사카는 지난해 9월 일시 문을 닫고 전시물 변경 공사에 들어가야만 했다.

4월 30일 피스오사카가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전시물이 크게 달라졌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존에 있던 일본의 가해 행위 전시물들이 사라졌다. 전시물 설명에서도 ‘침략’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과거 피스오사카에는 ‘난징대학살’ 관련 사진들이 전시됐다. “상하이(上海)에서 고전하던 일본군은 1937년 12월 13일 난징에 입성해 엄청난 수의 중국인을 살해했다. 사살, 산 매장, 고문, 참수, 익사…. 수 주에 걸쳐 살해당한 시민과 포로는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난징대학살’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일본 국민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알지 못했다”는 설명문도 붙어 있었다. 하지만 난징대학살 자료는 모두 사라졌다.

과거 전시실 1층에 ‘조선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일중 전쟁이 격화되면서 조선인 노동자가 급증했다…. 형식적으로는 ‘모집’ ‘관 알선’ 등이었지만 사실상 모두 강제였다”와 같은 설명문도 붙어 있었다. 이 코너도 사라졌다.

대신 2차대전 말기 연합군의 오사카 공습에 대한 전시 및 체험 공간이 그 자리를 채웠다. 가해의 역사에서 피해의 역사로 전시의 초점이 180도 바뀐 것이다.

30일 마쓰이 지사는 피스오사카를 둘러본 뒤 “좋은 시설이 됐다. 내용에 만족한다.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것이 전쟁임을 실감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물관 전시물을 바꾸기 전 전시에 관여했던 전(前) 피스 오사카 직원 쓰네모토 하지메(常本一) 씨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강제연행과 군위안부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고 전체적 구성도 일본이 방어적으로 전쟁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고 비판했다.

이날 시민단체 연합인 ‘피스오사카의 위기를 생각하는 연락회’ 회원들은 피스오사카 앞에서 ‘세계에서 통용되는 역사인식을’, ‘전쟁찬미의 평화관을 만들지 말라’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도쿄(東京) 시내 야스쿠니(靖國)신사 안에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식민지 해방전쟁’으로 미화한 전쟁박물관 ‘유슈칸(遊就館)’이 있다. 피스오사카는 어느새 ‘서부의 유슈칸’으로 변하고 말았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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