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황금보검’ 비밀의 열쇠를 풀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6일 2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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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대왕의 보검’ 출간

1973년 한국사에 획기적 사건이 발생한다. 경주 대릉원 근처 계림로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조그마한 신라 고분들이 발견된 것. 특히 계림로 14호 고분에서는 5~6세기 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보검(보물 제635호)이 출토됐다.

● 왜 국보도 아닌 보물급 ‘황금보검’에 주목 하는가

황금보검은 두 쌍의 금 귀걸이와 비취곡옥 2점, 눈에 녹색 유리구슬을 상감한 금제 사자머리 형상의 띠고리 2점, 마구와 철제 대검 등과 함께 있었다. 전체 길이 36cm, 최대 폭 9.3cm. 칼자루 끝장식이 반타원형이고, 칼자루의 폭은 반타원형 장식의 지름보다 좁다. 칼집 입구는 역 사다리꼴로 그 옆은 허리띠에 차도록 고리를 붙였다. 칼집은 끝이 넓고 칼집 위에 반원형 장식 금구로 구성된 단검으로 표면에 석류석 등의 귀금속과 누금세공 투각으로 전체가 장식됐다. 칼 몸은 철제이지만 의례용 패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뒤쪽에는 장식이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라의 보검과는 확연히 달랐다. 학자들은 현존하는 보검 중에서 세계 최고의 디자인과 제작 기술을 갖고 만들었다고 했다. 또 그것이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 ‘황금보검’은 7000km나 떨어진 비잔틴제국에서 왔다

그렇다면 황금보검은 어떻게 신라고분에 묻히게 됐을까. 신라와 비잔틴제국의 교류? 두 나라는 어림잡아 7000km나 떨어져 있다. 직교역이 아닌 간접교역을 했더라도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물론 신라가 실크로드를 통해 페르시아와 활발히 교역했다. 경주고분에서 페르시아산 장식보검이나 유리그릇 등이 출토된 게 그 방증이다. 당시 신라가 먼 세상과 활발히 교역했다고 하더라도 많은 의문부호가 남는다. 신라는 한반도의 동쪽 끝. 서방세계와는 멀어도 너무 멀다. 교역로와 교역상인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멀고 작은 나라와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교역했을까. 그리고 그 출발점은 무엇이었을까. 이 의문부호를 풀어주는 것은 하나의 가설(아직까진 그렇다)이다. 훈족의 존재다. 훈족은 흉노의 후예이며 신라의 김씨 왕조는 한나라에 투항한 흉노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가설이다.

이 황금보검 이동 비밀의 열쇠를 푸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으로 황금보검의 비밀을 밝힌다. ‘대왕의 보검 1·2(오세영 지음 l 나남 펴냄)’은 그 신라의 황금보검에 관한 역사소설이다. 우주로 날아가 버린 시간과 공간의 공백을 한 땀 한 땀 복원한다. 그래서 부제도 ‘황금보검의 비밀을 밝힌다’로 달았다. ‘대왕의 보검’의 시대배경은 8세기 중엽. 그렇다. 신라가 기울어지는 시기다. 통일신라는 태평성대로 당나라에서 사치풍조가 유입됐고 세상과 소통했던 상무정신(尙武精神)은 사라졌다. 남은 건 권력투쟁뿐. 마침내 내물계 선덕왕이 무열계 김주원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르며 황국제국을 꿈꾼다. 그리곤 북방진출을 시도했다. 그것이 훈족과의 연결점이다.

● 경주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7000km의 여정

작가는 ‘대왕의 보검’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한다. “보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떠난 길은 욕망과 고난으로 점철된다. 안개 속 황금보검의 정체를 더듬던 신라왕족 김양상은 드디어 콘스탄티노플에 다다른다. 온몸을 던져 황금보검의 비밀을 밝혀내는 김양상과, 그를 둘러싼 탐욕스런 무리들이 펼치는 전대미문의 활극을 펼친다. 타클라마칸 사막-바그다드-페르시아 등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펼쳐지는 장대한 스펙터클, 숨 막히는 클라이맥스가 이어진다. 대체 이 보검은 어떻게 신라 서라벌에 전해진 것일까? 경주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펼쳐진 7천 킬로미터의 여정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역사소설의 대가 오세영 작가의 장대한 스펙터클

우리를 1300여 년 전으로 이끄는 시간여행자는 오세영 작가다. 이미 역사소설 ‘베니스의 상인’을 발표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역사소설 전문작가다. ‘만파식적’ ‘화랑서유기’ ‘원행’ ‘구텐베르크의 조선’ ‘칠지도’ 등 역사소설을 꾸준히 발굴해왔다. 작가는 말한다. “20여 년째 역사소설을 써오면서 느끼는 것은 역사소설 집필은 참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부족한 사료의 틈을 상상력을 동원해서 메워야 하는데 그 상상력은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팩트와 픽션의) 어우러짐은 팩션만이 줄 수 있는 짜릿함이며 가려냄은 행간의 역사를 읽는 즐거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상 그는 역사소설가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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