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업체 영업사원들 “이모님! 우리 소주 권해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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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족쇄 풀린 지역구 소주들… 전국구 무대로 독한 전쟁
전화카드-핸드크림 돌리며 中동포 종업원들 공략

소주가 ‘燒酎’인 까닭은

소주의 한자 표기는 ‘燒酎’다. 맥주 양주에 들어가는 ‘酒(술 주)’ 자 대신 ‘酎(진한 술 주)’ 자를 쓴다. 조선 후기까지는 ‘燒酒’로 표기했지만 일제강점기 때 바뀌었다는 게 정설. 알코올 도수가 10도 안쪽인 막걸리 등에 비해 도수가 높다 보니 진한 술이라는 의미의 ‘酎’ 자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소주보다 도수가 높은 술이 많지만 이런 일본식 조어는 그대로 굳어져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같은 듯 다른 소주

부산 울산 경남에선 ‘좋은데이’나 ‘시원블루’가, 대구 경북에선 ‘맛있는 참’이 지역 업체의 대표 소주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가끔 낯선 라벨의 소주를 발견할 때가 있다. 수도권 업체들이 해당 지역 고객들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제품들이다.

하이트진로는 대구 경북에서 ‘참이슬 네이처’를, 부산 울산 경남에서 ‘쏘달’을 판매하고 있다. 롯데주류도 부산 등지에 ‘순한 처음처럼 자이언츠’를 내놓고 있다.

이들 회사의 대표 제품과 지역 특화 제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알코올 도수다. 이달에 새로 시판된 참이슬은 알코올 도수가 17.8도(이전에는 19도)인 데 비해 쏘달은 좋은데이를 겨냥해 도수를 16.9도로 맞췄다. 순한 처음처럼 자이언츠는 16도로 더 낮다. 반면 참이슬 네이처는 18도로 참이슬보다 높다. 올 초 경북지역 업체인 금복주의 ‘맛있는 참’이 리뉴얼되기 전 도수(19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지역 특화 제품은 생산 공장도 다르다. 전국에 팔리는 참이슬이 경기 이천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면 참이슬 네이처나 쏘달은 충북 청원공장에서 만든다.

장례식장서만 볼 수 있는 소주?


부산지역 장례식장에 가면 ‘그리워예’라는 소주를 볼 수 있다. 검은색 라벨의 이 소주는 사실 ‘예’와 같은 제품이다. 알코올 도수(16.7도), 생산 공정 등이 모두 같다. 대선이 이처럼 별도 제품을 내놓은 것은 제품명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다. 예가 처음 출시될 당시 제품명인 ‘즐거워예’가 장례식장의 엄숙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 일각에서는 경쟁사인 무학도 ‘좋은데이’의 제품명만 바꾼 ‘그립데이’를 판다는 소문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영업사원은 이모를 좋아해?

소주회사 영업사원들의 1차 ‘타깃’은 ‘이모’들이다. 이모는 식당에서 서빙하는 점원을 일컫는 말. 영업사원들은 이모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설거지나 신발 정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식당을 찾은 고객들이 그냥 “소주 한 병 달라”고 할 때 이모들이 어떤 제품을 갖다 주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과거 이모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판촉물은 전화카드였다. 전화카드는 이제 일반인은 잘 쓰지 않는 물건이 됐지만 중국동포 종업원들에게는 아직도 꽤 인기가 있다고. 겨울철에는 핸드크림이 인기 판촉물이다.

영업사원들은 점주에게도 공을 들인다. 달력부터 입구에 까는 발판, 차림표, 메뉴판 등에 이르는 다양한 물건에 자사(自社) 제품 이미지를 넣어 식당에 돌리는 것은 기본이다. 본래 특정 제품 사진이 들어간 차림표와 메뉴판을 식당에 비치하는 것은 ‘백세주’를 만드는 국순당이 1990년대 중반 처음 시작했다. 주류로는 소주 맥주 등이 전부였던 그때 백세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이를 소주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벤치마킹했고 이제는 차림표에 ‘소주’란 글자 대신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등의 브랜드명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주류업체 영업사원#소주#지역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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