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가는 도시에 땜질 보수… ‘제2 성수대교’ 조마조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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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
<3> 안전 패러다임을 바꾸자 (下) ‘공짜 안전’은 없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는 국민들에게 뚜렷한 보수 보강 대책 없이 방치된 도시 기반시설의 위험성을 일깨워줬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땅 위에는 ‘땜질식 처방’에 그친 낡은 교량이 여전히 있고, 땅속에는 지반 침하를 일으키는 노후 하수관로가 방치돼 있다. 방치된 시설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나도 참사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도시 노후시설물을 관리하고 유지 보수를 책임져야 할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 부족에 허덕일 뿐 사고 예방을 위한 전면적 조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 선뜻 건널 생각이 들지 않는 ‘낡은 교량’

준공된 지 44년이 지난 서울 성북구 북악스카이웨이 1교, 곳곳에 균열과 녹물이 흐른 자국이 있다.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임시 철근 교각 2개와 강선, 철판이 설치돼 있다. 다리 밑에는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준공된 지 44년이 지난 서울 성북구 북악스카이웨이 1교, 곳곳에 균열과 녹물이 흐른 자국이 있다.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임시 철근 교각 2개와 강선, 철판이 설치돼 있다. 다리 밑에는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본보는 교량 전문가인 김상효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와 함께 5월 서울시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긴급 조치 필요)을 받은 서울 성북구 북악스카이웨이 1교의 안전 상태를 13일 점검했다. 성북구 북악산로에 위치한 교량은 길이 60m, 폭 8m로 상판 4개를 붙여 만들었다. 완공된 지 44년이 지났고, 하루 평균 1만 대의 차량이 이 교량을 통과한다. 서울시는 북악스카이웨이 1교 상판의 부식이 진행됐으며, 상판 두께(15cm)가 현행 기준(22cm)에 맞지 않아 상판 추락 및 교각 붕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통행금지(E등급) 전 단계인 D등급 판정을 내렸다.

8월 보수 공사가 완료됐지만 전면 보수가 이뤄진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사고 위험성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교량을 버티고 있는 콘크리트 교각 3개 외에 임시 철근 교각 2개를 다리 중앙에 세워 상판 추락을 막았고, 부식이 진행된 상판 조각의 추락을 막기 위해 임시 교각 사이에는 철판을 깔았다.

그러나 본보가 김 교수와 함께 점검한 결과 상판뿐만 아니라 교각을 포함한 다리 전체의 철근에서 부식이 발생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철근이 부식되면서 부피 팽창이 일어나 철근을 둘러싸고 있는 접합재료인 콘크리트를 밀어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량이 교량 위를 지나갈 때마다 균열된 틈 사이로 부서진 콘크리트 가루가 뿜어져 나왔다. 김 교수는 “긴급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부분 보수가 아닌 교량 전체를 개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교량 밑 주택에 거주하는 김모 씨(43)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 밑에서 사는 기분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다”며 “하루에도 수십 번 다리만 바라보고 산다.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1979년 준공된 서울 동대문구 이문고가도 대표적 노후교량으로 정밀안전진단 결과 C등급(보수 보강 조치 필요)을 받았다. 지난해 12월까지 보수 보강 공사를 했지만 북악스카이웨이 1교 사례와 마찬가지로 개축을 한 것은 아니어서 보수 공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교수는 “예산 편성 문제로 적절한 시기에 개축해야 할 시설물들이 보수 공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빠른 노후화 속도를 막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반 침하 원인인 ‘낡은 하수관로’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 건물에서 근무하는 최모 씨(66)는 8월 22일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서초대로를 달리던 승합차의 앞바퀴가 도로 한복판에 발생한 구멍(폭 1.5m, 길이 1.8m, 깊이 1.2m)에 빠진 장면을 본 것. 다행히 운전자는 경찰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그러나 최 씨의 가슴 한편에 남은 불안감은 떨쳐지지 않았다. ‘매일 이 도로를 이용하는데 나라고 구멍에 빠지지 말라는 법 있나….’ 최 씨를 혼란스럽게 한 구멍은 하수관로 불량으로 인한 지반 침하로 발생한 것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노후 하수관로는 ‘싱크홀’과 ‘동공(텅빈 굴)’ 등 지반 침하 현상의 주요 원인(85%)으로 꼽힌다. 본보가 서울의 A구가 관할하는 구역 내 하수관로 내부 촬영 사진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30년 이상 사용된 노후 하수관로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된 하수관들은 상층부에 구멍이 뚫려 있거나 1m가량 덮인 토사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구부러져 있었다. 전문가들은 균열의 원인으로 △하수관 설계상 부실 △하수관 주변 공사상 과실을 지적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노후 하수관의 경우 개별 하수관 사이에 콘크리트로 이음매를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이 때문에 이음매 부위가 부식되면서 하수관로가 ‘V자형’으로 꺾여 지반이 내려앉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분석했다. B구의 안전치수과 관계자는 “메인 하수관을 가정 하수관과 잇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구멍을 뚫은 뒤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발생한 구멍으로 토사가 유입돼 지반 침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지반 침하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균열이 발생한 하수관로를 사전에 발견해 보수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A구에 따르면 크기가 작은 지름 60cm짜리 하수관로 200m를 보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억2000만 원에 달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하수관의 크기와 주변 상황에 따라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책정된 예산만으로는 하수관로의 전면 보수가 힘들다”고 말했다.

박성진 psjin@donga.com·정윤철 기자
#안전#다리#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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