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여기 주인은 파리와 모기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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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노던테리토리의 ‘울루루 카타추타 국립공원’ 율라라 마을에서 구입한 그림엽서. ‘백만 마리 파리에겐 죄가 없다’고 쓰여 있다.
호주 노던테리토리의 ‘울루루 카타추타 국립공원’ 율라라 마을에서 구입한 그림엽서. ‘백만 마리 파리에겐 죄가 없다’고 쓰여 있다.
그림엽서를 빼곡히 메운 이 작은 물체. 파리(영어로 fly)다. ‘백만 마리 파리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는 글씨가 이를 확인시켜 준다. 아래엔 ‘호주(Australia)’라고 쓰여 있다. 관광엽서에 파리 그림? 통상의 엽서치고는 기괴하다. 게다가 파리는 뒷면까지 장식했다. 엽서 전면을 흐릿하게 덮었다. 이 엽서는 현지서도 뜨악하다. 전후사정을 모른 채 받게 된다면 글쎄, 황당할 게 틀림없다.

처음엔 장난삼아 만든 게 아닐까 싶었다. 이런 걸 사서 보낼 사람이 없을 듯해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1908년 설립된 ‘머리 뷰스(murrayviews.com.au)’라는 호주의 전문기업 제품이었다. 그렇다면 뭔가 의미를 담으려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일까. 그렇다. ‘환경’ 문제였다.

이걸 산 건 3주 전 호주 중북부 노던테리토리 주의 율라라(Yulara)에서다. 율라라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울루루 카타추타 국립공원’ 근방의 리조트타운이다. 유스호스텔과 로지, 호텔, 리조트 등 숙박과 관광시설로만 이뤄진 작은 마을이다. 노던테리토리는 남한 면적의 열네 배가 넘을 정도로 광활하다. 하지만 주민은 고작 24만4000명뿐. 대부분 사막이어서다. 그래서 호주에선 여길 ‘아웃백(Outback·오지)’이라고 부른다.

‘아이어스 록(Ayers Rock)’이라고도 불리는 울루루는 노던테리토리의 상징이다. 지상에서 한 덩이 바위로는 가장 크다고 알려진 바위산이어서다. 둘레가 9.4km, 높이가 348m나 된다. 그런데 세인의 관심은 온통 붉은 빛깔의 바위(사암)가 주변과 어울려 빚어내는 특별한 모습에만 쏠린다. 이곳은 사막에 버금가는 아건조(Semi-arid)기후대의 황무지. 그래서 키 작은 관목만 덤불 형태로 자란다. 산도 없고 온통 평지다. 바위는 그런 광대한 황무지를 뚫고 치솟은 듯, 하늘서 뚝 떨어진 듯 홀로 지평선을 배경으로 덩그렇게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노던테리토리엔 파리가 기승한다. 파리는 사람만 보면 끊임없이 달라붙는다. 그것도 꼭 코와 입, 귀, 눈에만 집중적으로. 그러니 짜증이 날 수밖에. 그래서 여기선 관광이 파리와의 전쟁이다. 물론 효과적인 도구도 있다. 머리 전체에 뒤집어쓰는 방충망이다. 그러다 보니 울루루에선 아주 특별한 광경을 목격한다. 방충방으로 얼굴을 가린 관광객들이다.

이곳 파리가 코 입 귀 눈에만 들러붙는 이유. 단백질과 염분 탄수화물 당분 등 영양분을 땀 체액 같은 인체의 분비물에서 취하도록 진화해서다. 그렇다면 살충제로 죽이면 되지 않을까. 그런 방법은 여기선 환영받지 못한다. 벌과 나비가 하는 꽃가루받이를 여기선 파리가 해주기 때문이다. 즉, 이곳 파리는 생태계의 중요한 고리를 이루는 생명체다.

나는 똑같은 경험을 미국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서 해봤다. 이곳은 갈대로 뒤덮인 거대한 늪지로 서울의 열 배쯤 되는 곳이다. 늪은 한여름엔 모기천국이다. 그런데도 나는 전혀 대비 없이 찾아갔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로지(숙소) 건물 자체를 방충망으로 덮은 모습인데 주차장에서 로지까지 20m를 100m 달음질 속도로 뛰었건만 이미 200방쯤 물린 뒤였다. 예정된 나흘의 취재를 마치고 공원을 나설 즈음에는 내가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모기에 물린 탓이다.

에버글레이즈에서는 모기약으로 리펠런트(repellent·몸에 뿌리는 모기약)만 허용한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걸 모기에게 뿌릴 수밖에. 그러자 로지 주인이 벽을 가리키며 손사래를 쳤다. 거기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 ‘공원의 주인은 모기입니다. 당신은 방문객일 뿐입니다.’ 모기를 죽이지 말라는 ‘경고문’이었다.

손님은 손님이다. 절대로 주인일 수 없다. 손님이 주인 행세를 하면 질서는 깨지고 다툼이 벌어진다. 만약 울루루의 파리가 죽고 에버글레이즈의 모기가 사라진다면 그곳 자연은 어떻게 될까. 이내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객전도가 어찌 관광지에서만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 일상에도 허다하다. 국민을 무시하는 국회의원이, 국민 세금으로 연금재정을 배불리는 공무원들이 그렇다. 손님은 손님. 결코 주인이 될 수는 없다.―율라라(호주 노던테리토리 주)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파리#모기#조성하#율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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