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작권 유지 韓美 합의, 다시는 反美로 안보 흔들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4일 03시 00분


한국과 미국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다시 연기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구체적인 시기를 명시하지 않은 채 한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충분한 억제력과, 최악의 경우 대북 선제 타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미룬 것이어서 사실상 무기 연기다. 이로써 강력하고 효율적인 전쟁 억지 체제인 한미연합사령부가 계속 유지된다. 대한민국 안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전작권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작전 수행을 위해 부대를 지휘하는 권한이다. 한국군의 전작권은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군사령관에 이양된 뒤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과 함께 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에게 넘겨졌다. 전작권 전환으로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과 병력 증원, 핵우산 제공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해 3차 핵실험을 한 뒤 핵 소형화와 미사일 개발을 통해 핵무기의 실전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 것은 전쟁 발발 시 미국의 즉각 개입을 담보하는 안전장치의 작동을 확실히 보장받은 것과 다름없다.

안보의 핵심인 전작권 문제가 흔들리게 된 것은 2005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안보정책구상 회의에서 미국에 전작권 전환을 공식 제안하면서부터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9월 자주와 주권 확보를 명분으로 안보 환경과 우파 진영의 반대를 무시한 채 미국과 전작권 전환 방침에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전작권 합의 다음 달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감행해 남북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노 정부는 2007년 2월 24일 “전작권 환수는 나라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자 자주 국방의 핵심”이라며 미국과 2012년 4월 17일까지 전작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에 합의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반미(反美)면 어떠냐”는 자신의 발언에서 드러난 대로 대미 의존관계 축소에 골몰해 북한의 현실적 위협을 보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 27개국으로 구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회원국이 공격 받으면 다른 회원국들이 군사력을 제공하고 전작권은 미군 나토사령관이 행사한다. 전작권 문제를 주권이나 자주국방 문제와 연결시킬 수 없는 이유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제 “전작권 재연기는 주권 포기나 다름없다”며 “정부는 남북관계 악화로 인한 안보 여건의 변화를 들고 있지만 이는 대북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이 집권 시절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과오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노무현 식의 대미 인식에 빠져 있어 안타깝다.

‘전작권 시계’를 8년 전으로 되돌리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국론이 분열되고 갈등이 심화하는 부작용을 겪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교체된 뒤 전작권 전환 연기 여론이 높아져 당초 ‘2012년 4월 17일’이던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했으나 미봉책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전작권 전환을 강행하던 시절 합참의장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상황 판단을 그르친 안보책임자들은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한다.

한국이 미래에 직면할 안보 위기는 북한의 위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북통일이 이뤄진 이후에도 중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과의 직접 접촉은 더 큰 차원의 안보 위협이다. 졸속으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다가 상황이 위급해지자 미국에 매달려 연기를 읍소하는 수준의 안보 전략으로는 강대국 사이에서 평화를 지키기 어렵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합의했지만 한국과 미국은 연합사 본부의 용산기지 잔류와 미 2사단 예하 210화력여단의 동두천 잔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5년까지 주한미군을 모두 평택기지로 이전하기로 한 합의에 배치되는 것으로 지역주민 설득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전작권 전환의 조건인 핵심 군사능력 확보는 전적으로 한국의 책임이다. 국방력 배양에 박차를 가해 가능한 한 빨리 스스로의 힘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방어를 위한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체계 구축은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둘러야 한다.

한미동맹은 든든한 방패이기는 하지만 한국군이 싸울 태세를 갖추지 못하면 북한의 도발에 맞서기 어렵다. 우리 군은 현재 부실과 부패, 기강해이로 인해 국가와 국민을 수호할 역량이 있는지 회의적이다. 군의 최정예부대인 특수전사령부는 북한의 AK-74 소총에 뻥뻥 뚫리는 방탄복을 구입해 병사들에게 입혔다. 현역 사단장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사건으로 구속돼 국방부 장관이 강력 경고했지만 육군 중령이 부하 여군 장교를 성폭행한 사실이 다시 밝혀져 국민을 놀라게 했다.

군은 안보를 미군에 의존한 채 안일에 젖어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군이 환골탈태의 노력으로 부패 고리를 끊고, 전투력과 기강을 확립해야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고 국가를 지킬 수 있다.
#전시작전통제권#한국#미국#북한#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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