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도플갱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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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책이 아니잖아… 비슷한 책 표지에 깜빡

다른 저자,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인데도 표지 이미지가 똑같은 경우를 보게 된다. 국내 출판사들이 이미지 뱅크 업체로부터 우연히 같은 사진을 사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독자들은 자신의 환영을 보는 괴현상을 뜻하는 ‘도플갱어’에 빗대기도 한다.
다른 저자,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인데도 표지 이미지가 똑같은 경우를 보게 된다. 국내 출판사들이 이미지 뱅크 업체로부터 우연히 같은 사진을 사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독자들은 자신의 환영을 보는 괴현상을 뜻하는 ‘도플갱어’에 빗대기도 한다.
“소설 제목이 갑자기 생각 안 나는데…. 파란 커튼 밑으로 빨간 하이힐 신은 여자 다리가 보이는 표지일 거야. 그거 사오면 돼.”

회사원 박모 씨(40)의 아내는 소설광이다. 퇴근길 서점에 들러 아내가 부탁한 책을 사간 박 씨. 고맙다는 말을 기대했던 박 씨는 아내의 실망한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 북 도플갱어?

그의 아내가 원했던 책은 일본 작가 오리하라 이치의 ‘그랜드맨션’(비채)이었다. 박 씨가 사간 책은 김서진 작가의 신작 소설 ‘2월30일생’(나무옆의자). 박 씨는 “나중에 보니 두 책의 표지가 똑같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황당해했다.

지난해 말 출간된 ‘살아 숨 쉬는 마을 만들기’(알마)와 올해 6월 나온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동양북스)의 표지도 노란색 배경과 수십 명의 얼굴을 모아놓은 만화 이미지가 유사하다. 여기에 3월 출간된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궁리)까지 나란히 놓으면 마치 세 쌍둥이처럼 닮았다.

소설 ‘숨그네’(문학동네)와 ‘한 여름의 살인’(좋은책만들기), ‘토성의 고리’(창비)와 ‘영원히 사라지다’(비채)처럼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책 표지가 비슷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 출판사들, “이미지 뱅크에서 저렴하게 사다 보니…”

대학생 이수경 씨(27)는 “친구들과 ‘비슷한 책 표지 찾기’ 놀이를 한 적이 있을 정도”라며 “표지가 비슷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닮은꼴 표지가 늘어난 데는 제작 시스템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예전엔 신간의 표지 제작을 주로 외부 디자이너에게 맡겼다. 하지만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표지를 제작하는 경우가 늘면서 표지에 쓸 사진과 그림을 해외 ‘이미지 뱅크 업체’에서 구입하다 보니 비슷한 표지가 등장하게 됐다는 것.

게티이미지, 드림스타임, 셔터스톡, 토픽이미지 등 이미지 뱅크 업체는 그림, 사진을 판매하고 수익을 작가와 반반씩 나누는 회사다. 국내 출판사도 이들 업체와 계약을 하고 단행본 표지에 쓸 이미지를 사용 기간 7년에 건당 20만 원가량을 주고 구매한다.

이런 추세는 출판계 불황과도 연관이 있다. ‘궁리’의 김주희 편집자는 “국내 디자이너에게 발주하면 기존 이미지를 구입할 때보다 비용이 10배나 더 든다”고 밝혔다. 이미지 뱅크 업체에서 그림을 구입할 때 다른 출판사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국내 독점 사용’을 신청할 수도 있으나 이 경우 3∼4.5배 더 지불해야 한다.

○ 책 종류에 따라 선호 이미지도 달라져

이미지뱅크 업체의 한 관계자는 “출판사들이 선호하는 이미지가 비슷한 것도 같은 장르의 서적에서 표지 디자인이 겹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국내 출판사들은 문학 표지로 추상적인 이미지를 즐겨 쓴다. 반면 해외 출판사는 표지만 봐도 주제를 알 수 있도록 책의 내용과 직결되는 이미지를 선호한다.

사회과학 서적의 경우 배경색으로 노랑 등 따뜻한 계열을 주로 선택한다. 딱딱한 책 내용을 쉽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완화하려는 것. 소설에는 붉은색 등 강렬한 색이 주로 쓰인다.

‘열린책들’의 강무성 주간은 “출판계에는 책 표지는 화려한데 책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아 독자의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요즘은 디자인 전공자보다는 책 내용을 잘 아는 편집자나 인문학 전공자들이 디자인을 배워 직접 표지 디자인을 맡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책 표지#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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