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센’에 환호하는 日젊은이들… 침략범죄에 ‘영웅’ 덧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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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특공대 다룬 영화-소설 인기… 박물관 11곳서 실물-모형 전시
“전쟁의 죄악을 미화하다니…”, 전쟁 직접 겪었던 노병들 개탄

일본 히로시마 현 구레 시 ‘해사역사과학관’에 전시돼 있는 제로센. 방문객들이 거의 예외 없이 이것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구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히로시마 현 구레 시 ‘해사역사과학관’에 전시돼 있는 제로센. 방문객들이 거의 예외 없이 이것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구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지난해 8월 일본 히로시마(廣島) 현 구레(吳) 시 해사(海事)역사과학관. 기자가 방문했을 때 태평양전쟁 당시 자살 특공대가 사용한 ‘제로센(零戰)’ 앞에서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초등학생들은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제로센 주위를 뛰어다녔다.

최근 일본 박물관에서 ‘제로센 열풍’이 불고 있다. 실물이나 모형은 일본 전국 11개 박물관 및 역사관에 전시돼 있다. 그중 7개가 2000년 이후 설치됐다. 지난해 6월 오이타(大分) 현 우사(宇佐) 시에서 개관한 평화박물관은 중앙홀에 제로센을 배치했다. 도쿄(東京) 다이토(臺東) 구의 국립과학박물관도 항공기술 발전을 소개하며 태평양에서 건져 올린 제로센을 전시하고 있다.

1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박물관에 제로센 전시가 늘어나는 것은 방문객 유치를 위해서다. 자살특공대로 출격해 사망한 조부의 역정을 추적하는 청년을 다룬 소설 ‘영원의 제로’가 2006년 히트하면서 제로센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다. 지난해 12월 같은 이름의 영화도 개봉됐다. 직장인 가토 쇼이치로(加藤正一郞·32) 씨는 “영화 ‘영원의 제로’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주인공이 탔던 제로센을 실제로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로센을 설계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의 삶을 그린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지난해 7월 개봉)도 젊은이들에게 제로센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실제 제로센을 타고 목숨을 걸었던 특공대원들은 위화감을 느낀다. 올해 92세인 데즈카 히사시(手塚久四) 씨. 그는 도쿄대 2학년이던 1943년 학도병으로 해군에 입대해 1945년 2월부터 제로센을 탔다. 그는 15일 보도된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인간을 폭탄 대신 사용한 특공을 절대 미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고 집단자위권 행사를 강행 통과시킨 현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며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잘못을 반복한다”고 지적했다.

다나카 미쓰나리(田中三也·90) 씨는 적함을 찾는 정찰기를 몰았다. 하지만 친구들 상당수는 제로센의 자살 특공대였다. 그는 도쿄신문에 “특공대원들은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부터 고향인 지바(千葉) 현에서 자신의 체험담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며 “목숨을 소중히 여기라”고 조언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때 제로센 조종사로 적 항공기 19대를 격추한 하라다 가나메(原田要·98) 씨는 올해 8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걸프전 때 다국적군의 공격 장면을 젊은이들이 마치 불꽃놀이 같다고 표현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전쟁의 죄악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레·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제로센#자살특공대#카미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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