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몰자각의 글쓰기로 문학과 일대일 맞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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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구효서 지음/312쪽·1만3000원·현대문학
소설 ‘타락’ 펴낸 구효서 작가

신작 장편소설 ‘타락’을 출간한 구효서 작가. 그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내가 전에 어떤 작가였는지 잊고 싶은가 보다. 잊고 싶은 마음이 자꾸 또 다른 소설을 쓰게 한다. 자꾸자꾸. 나는 그것이 시방 고맙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신작 장편소설 ‘타락’을 출간한 구효서 작가. 그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내가 전에 어떤 작가였는지 잊고 싶은가 보다. 잊고 싶은 마음이 자꾸 또 다른 소설을 쓰게 한다. 자꾸자꾸. 나는 그것이 시방 고맙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993년 서른여섯 구효서 작가는 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신세대 작가로 불린 그는 소설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에서 파격적인 글쓰기를 선보였다. 바코드 기호, 컴퓨터 화면을 소설 속에 그대로 옮기고 군대 사체검안서, 공문서, 계약서 형태로 글을 썼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선배 문인과 평론가들의 욕뿐이었다. 훗날 등단한 후배들이 “그 소설 정말 좋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실험을 멈춘 뒤였다.

21년이 흘러 그도 내일모레면 환갑이다(정확히는 57세).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가 됐지만 무언가 허전했다. 그는 “장난, 유희, 도발 같은 파괴적인 엉큼한 취향이 내 안에 있었다. 항상 그것이 고개를 들려고 했는데 가장 노릇, 가장적 작가로서 의식이 있다 보니 늘 저 밑에 가려져 있었다”고 했다.

그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겠다”며 실험을 감행했다. 독자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서사, 읽는 맛을 돋우는 구수한 입담은 새 소설에 없다. 최근 출간된 소설 ‘타락’(현대문학)은 그의 대표작 ‘비밀의 문’ ‘랩소디 인 베를린’ 등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 서사는 납작하고 한 편의 정물화를 감상하듯 이미지가 풍성하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낯선 이국 땅 버스정류장에 선 ‘산’의 두 팔 위에 ‘이니’란 여인이 뚝 떨어진다. 둘은 교외의 오래된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사랑의 크기를 키우지도 않는다. 잘 씻지도 먹지도 않고 출생 이전 자궁으로 죽음으로 다가서려 한다. 이소연 평론가는 작품 해설에 “독자는 그 앞에 놓여 있는 작품과 더불어 한 작가가 구축해온 세계 자체가 와해되는 놀라운 광경을 필경 목도하고 만다”고 썼다.

―새로운 구효서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정통소설을 쓴 것을 후회하거나 가치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하고 싶은 방향이 생겼다. 작가란 무엇인지, 소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끝없이 질문을 던졌는데, 나이가 드니까 조금 무뎌졌다. 남들이 알아주는 맛, 돈 맛…, 그것 달콤하잖아. 그런데 이제는 비겁하지 말고 솔직해보자, 문학과 일대일로 맞대면하자고 결심했다.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소설만 잘 팔린다. 솔직히 빨리 읽히지 않았다.

“재밌으면 빠르게 읽히고, 공감과 감동도 빨리 오고, 더 많은 사람이 읽고, 그러면 책이 더 잘 팔리겠지. 하지만 거부하고 싶다. 내 소설은 현실에 대한 정직한 반영이었다. 이번엔 일부러 모호하게, 묘하게, 아슴아슴하게 만들었다. 소설에 구체적인 지명도 없고 캐릭터도 순수기호로만 남았다. 독자는 읽으면서 낯설고 이상해서 짜증 나서 책을 버릴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목적은 달성했다.”

―쉽게 안 써졌겠다.

“일종의 ‘몰자각의 글쓰기’를 했다. 내 안의 자각, 자의식을 최소화하고 직관적으로 용인하려 했다. 주관을 최소화하면 소설이 어떤 무늬로 달라질까 궁금했다. 글 쓰는 속도가 빨라지면 어느새 옛날 습관처럼 쓰고 있었다. 그러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시 앉아서 쓰다가 습관이 나오면 멈추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다.”

인터뷰하던 날 작가는 멋스러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아들뻘이 입는 유행 타는 옷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아들과 옷을 돌려 입는다고 했다. “신체의 ‘조락(凋落)’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고목에서 새순이 나는 것처럼 회춘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옷맵시를 보니 엄살 같았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타락#구효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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