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 한 자 세공조각하듯 手작업… 한글 표정이 밝아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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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글꼴디자이너 1세대 최정호 생애 다룬 책 9월말 출간

① 확대경으로 글꼴 원도 작업을 검토하는 최정호. ② 펜 밑그림을 가는 붓으로 마무리하는 모습. 최정호는 서예가들과 교류하며 고유의 ‘궁서체’를 개발했다. ③ 최정호의 제목글꼴 디자인이 적용된 1970년 3월 23일자 동아일보 1면. 이전보다 획의 맺음과 세로줄 시각흐름이 정돈됐다. 노은유 씨 제공
① 확대경으로 글꼴 원도 작업을 검토하는 최정호. ② 펜 밑그림을 가는 붓으로 마무리하는 모습. 최정호는 서예가들과 교류하며 고유의 ‘궁서체’를 개발했다. ③ 최정호의 제목글꼴 디자인이 적용된 1970년 3월 23일자 동아일보 1면. 이전보다 획의 맺음과 세로줄 시각흐름이 정돈됐다. 노은유 씨 제공
《 펜보다는 자판으로, 종이보다는 스크린으로 한글을 쓰고 읽는 시대다. 익숙한 글꼴은 명조, 고딕, 굴림. 이들 기본글꼴의 생김은 저절로 정리된 걸까? 그럴 리 없다. 자음 모음 조합을 폭넓게 고려해 일일이 손으로 다듬어 처음 조각해낸 이가 틀림없이 있었다. 누구나 날마다 쓰는 것을 만들었으나 까맣게 잊혀진 1세대 한글 글꼴디자이너의 이름은 최정호(1916∼1988)다. 》

흩어진 그의 기록과 자취를 끌어모은 책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안그라픽스)가 이달 말 출간된다. 저자는 후배 글꼴디자이너 안상수(62) 노은유 씨(31). 1990년대 ‘아래한글’에 탑재돼 널리 알려진 ‘안상수체’를 만든 안 씨는 1978년 한 디자인잡지 인터뷰를 통해 최정호를 처음 만났다.

“서울 신문로 출판사 구석자리 책상 위에 먹물, 연필, 모눈종이, 지우개, 돋보기가 놓여 있었어요. 화려하게 살다 간 인물은 아니었지만, 이 땅에 그만큼 깊은 족적을 남긴 디자이너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최정호는 ‘공부 못 하고 글씨 잘 쓰는 소년’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 전 글자 일곱 개를 건네주고 따라 쓰도록 한 부친의 숙제가 평생의 업이 됐다. 글씨쓰기 숙제를 검사하던 교사에게 ‘누가 대신 써 줬느냐’며 따귀를 맞기도 했다.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낮에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밤에 미술학원에서 도안을 배웠다. 그때 화장품광고 문구를 보고 처음 ‘한글도 저렇게 아름답게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해 습작을 만들기 시작했다.

최정호 씨의 업적과 생애를 책으로 엮어낸 글꼴디자이너 안상수(왼쪽), 노은유 씨는 “선배가 남긴 큰 숙제를 해낸 기분”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최정호 씨의 업적과 생애를 책으로 엮어낸 글꼴디자이너 안상수(왼쪽), 노은유 씨는 “선배가 남긴 큰 숙제를 해낸 기분”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귀국 후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인쇄소를 운영하던 최정호는 1954년 동아출판사의 제안으로 처음 한글 활자 원도를 그렸다. 고속회전기로 정밀한 활자를 만들 수 있는 자모조각기를 처음 미국에서 사들여온 출판사 사장은 흠 없는 원도를 조각해낼 사람이 최 씨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최정호는 3년간 무수한 시제품을 용광로에 던져 녹인 끝에 2200여 자의 첫 원도를 완성했다. 노은유 씨는 “한글 활자 디자인은 분명 이 시점 전과 후로 나뉜다”고 했다.

“안정감과 세련미에서 전의 활자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출판물에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그가 처음 만든 특별한 디자인이, 지금 우리가 매일 쓰는 평범한 서체가 된 거죠.”

최정호의 명성은 한국에 사진식자기 수출을 원한 일본 업체에 전해졌다. 1969년 모리사와사가 그에게 한글원도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때 만든 것이 지금 쓰는 ‘명조체’ ‘고딕체’의 원형이다.

“모리사와 한자체에 ‘명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죠. 최 선생은 훗날 ‘누군가 그 이름을 바꿔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어요. 초청받은 장인이었지 하청업자가 아니었으니까요.”(안 씨)

자신의 이름을 단 서체에 대한 바람은 말년에야 언급했다. 최정호는 1988년 한 벌의 ‘최정호체’ 기본 원도를 완성하고 한 달 뒤 세상을 떠났다. 안 씨와 노 씨는 그 뼈대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처음 명조체보다 폭이 약간 좁고 선이 살짝 굵어졌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적용시킨 미세한 변화인데, 지금 글꼴디자이너들이 대부분 폭을 좁히고 획을 굵게 만들어서 쓰거든요. 훗날의 쓰임에 맞는 글꼴을 20여 년 전에 만들어놓고 가신 건가 싶어요.”(노 씨)

최정호는 후배 글꼴디자이너들에게 “더 균형 잡힌 ‘그’와 ‘교’자를 만들어 달라 당부하곤 했다. 수십 번 썼다 지웠다 하며 최선을 다해 내놓았지만 ‘그’는 어떻게 쓰든 유난히 커 보이고, ‘교’는 내려 긋는 작대기 3개가 각각 잘난 듯이 버텨 서서 어색해 보인다는 것. 그의 한글 원도 완본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만 보관돼 있다. 남겨진 숙제는, 더 매끈한 ‘그’ ‘교’자만은 아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글꼴디자이너#한글 디자이너#한글#최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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