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견실 커튼-가구에 조선왕실 상징 배꽃문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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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덕수궁 석조전 13일 개관

덕수궁 석조전에 복원된 대한제국 당시 고종 황제의 침실. 이 침실처럼 서양식 궁전을 본떠 만든 석조전은 서구 문물을 배워 대한제국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고종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는 평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덕수궁 석조전에 복원된 대한제국 당시 고종 황제의 침실. 이 침실처럼 서양식 궁전을 본떠 만든 석조전은 서구 문물을 배워 대한제국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고종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는 평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대한제국 부활의 꿈이 104년 만에 다시 살아났다.’

덕수궁 석조전이 5년여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13일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다. 7일 미리 공개된 석조전을 찾았다.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 사이로 레드카펫을 밟고 들어가자 10m 높이의 화려한 중앙 홀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1910년 준공 당시 사용한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 뒤로 새하얀 회벽과 황금빛 꽃무늬 장식이 어우러졌다. 조선 전통 양식을 배제하고 정통 유럽식 왕궁을 지향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곳이 조선의 왕궁임을 일깨운 건 중앙 홀 정면 접견실의 커튼과 가구, 벽면 장식 등에 새겨진 배꽃 문양.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복원의 자문을 맡은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고종은 서구 문물을 배워 대한제국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서양식 건축양식을 본떠 석조전을 지었다”고 말했다.

석조전은 고종이 1910년에 세운 대한제국의 궁궐이었다. 그러나 완공된 그해 일제에 병합되면서 석조전의 운명도 가시밭길로 접어들었다. 1933년 일제에 의해 미술관으로 바뀌어 내부 장식이 훼손되고 굴뚝이 뽑히는 수모를 당했다. 이어 광복 직후 미소공동위원회와 유엔 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차지했다. 1950년 6·25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에 의해 내부가 불에 타기도 했다. 전후 석조전은 박물관과 미술관 등으로 쓰였다.

문화재청은 일제강점기 이전 석조전의 원형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141억 원을 들여 2009년부터 복원 공사에 들어갔다. 침실과 서재, 식당, 접견실 등은 설계도와 사진 고증을 거쳐 원형 복원을 했다. 나머지 공간은 황실 생활상을 재현한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이름도 석조전에서 ‘대한제국역사관’으로 바꿨다. 개관일인 13일은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즉위를 선포한 날이다.

석조전 복원은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대한제국을 근대 자주 독립국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계에선 고종이 아관파천 직후 경복궁을 떠나 덕수궁으로 환궁한 것이 항일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앞서 1893년 10월 고종이 선조의 환도(還都) 300주년을 맞아 왕비와 세자를 거느리고 덕수궁을 찾았다. 선조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란을 갔다가 한양으로 돌아와 덕수궁에 머물렀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당시 일본과 청나라에 시달리던 고종이 300년 전 선왕의 고초를 되새기려는 의도로 덕수궁을 찾았는데 이것이 환궁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덕수궁 석조전#복원#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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