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비밀노트]<7>마카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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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레시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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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전부다. 색이 옳을 때, 형식도 옳다. 색은 모든 것이며, 색은 음악과 같은 떨림이다. 모든 것은 떨림이다.”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은 이렇게 말했다.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색들까지 볼 수 있었던 샤갈은 파스텔 톤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 파스텔 톤 색채가 지천인 곳이 내 고향 부산하고도 감천동과 영도다. 초록과 노랑 그 사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미도리(midori), 노랑에 진 그림자 같은 카지노 크림(casino cream), 청명한 공기를 닮은 프레시 에어(fresh air)처럼. 이름부터 찬란한 색으로 칠한 집들이 산동네를 덮고 있다. 그 색을 칠하게 된 사연은 예뻐서가 아니다. 정확한 이유는 흰색 페인트에 조색제만 살짝 섞어도 얻을 수 있는 게 파스텔 톤 색이라서 그렇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파스텔 동네는 부산에서도 가장 못사는 곳이다.

나는 이 프랑스 과자를 볼 때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마카롱이다. 예쁜 것에 목숨을 거는 프랑스인들이지만 어쩌자고 그 색을 과자에 물들이려 했을까. 비 갠 봄 하늘, 연하게 번진 봉숭아 물, 서서히 스며드는 연두색 뒷산처럼 그 모든 좋은 것의 색을 빌려온 것이 바로 마카롱이다.

영화 ‘대부’의 감독 프랜시스 코폴라의 딸, 소피아 코폴라가 만든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 2006년)에서 마카롱은 주연급 역할을 한다. 귀족들은 마카롱을 입에 달고 산다. 더구나 영화 속 의상의 색도 모두 마카롱에서 따온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 귀족이 누리던 화려함의 상징이다.

예쁜 만큼 만드는 방법도 까다롭다. 마카롱은 마카롱 페이스트, 머랭(meringue), 속(filling)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전통적으로 페이스트는 아몬드 가루와 아이싱 슈거(icing sugar), 달걀흰자를 섞어 만든다. 여기에 초콜릿이나, 산딸기 페이스트를 넣는다. 예쁜 색을 연출하기 위해 인공색소를 첨가하기도 한다. 페이스트가 준비되면 여기에 머랭을 섞는다. 그리고 짤 주머니로 유선지를 깔아놓은 베이킹 트레이 위에 예쁘게 짜 15∼20분 정도 쉬게(resting) 놔둔다. 이때 표면이 건조해지면서 바삭해지고 윤기가 나게 된다. 그 다음에는 17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8분 정도 굽고 식힌다. 이것이 마카롱 비스킷이고 여기에 준비한 속을 바른 뒤 비스킷 한 쌍을 겹치면 끝이다. 페이스트의 농도, 머랭의 견고함, 휴지 시간, 오븐 온도 등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예전엔 고급숍에서나 보던 마카롱을 요즘은 맥도날드, 스타벅스에서도 판다. 대신 그만큼 맛도 떨어졌다. 대량으로 찍어 나오는 마카롱은 완벽한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식감이나 맛은 모양에 못 미친다. 끈적거리고 단단하며 입안에서 산뜻하게 녹아내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마카롱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기계로 찍어낸 것들의 맛을 진짜라고 알까봐 걱정된다. 그것은 좋은 것의 소중함을 가볍게 만들고 기만당하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정동현 셰프
정동현 셰프
내가 늘 그리워하던, 나 살던 마카롱 빛깔의 그 산동네는 이제 관광객이 북적이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화려한 색의 집에서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그곳 동네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때로 사람들은 외면의 아름다움만 볼 뿐 그 사연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샤갈의 그림 속 파스텔 톤의 색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 뒤를 조용히 받치고 있는 침묵의 음영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행복하기에 마카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밝음이 필요하기에, 조그만 행복을 간절히 원하기에, 그 작은 것을 입안에 넣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카롱이 그토록 예쁜 것은 힘들고 지치는 삶이 존재한다는 증거 아닐까? 가난한 삶을 파스텔로 칠한 하늘 아래 동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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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2)는 영국 고든램지 요리학교 ‘탕테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정동현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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