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戰士의 반항, 賢者의 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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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반항하라/왕후이 지음/572쪽·3만원·글항아리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인디고연구소 지음/308쪽·1만8000원·궁리

중국 신좌파의 대명사인 왕후이의 박사논문을 발전시킨 ‘절망에 반항하라’는 절망과 싸운 역설의 투사 루쉰(왼쪽 사진)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현대성의 현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인터뷰집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는 현대성의 위기를 낳은 조건에서 역설적 희망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각각 키워드는 절망과 희망으로 대조적이지만 그 울림은 하나로 공명한다. 글항아리·궁리 제공
중국 신좌파의 대명사인 왕후이의 박사논문을 발전시킨 ‘절망에 반항하라’는 절망과 싸운 역설의 투사 루쉰(왼쪽 사진)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현대성의 현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인터뷰집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는 현대성의 위기를 낳은 조건에서 역설적 희망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각각 키워드는 절망과 희망으로 대조적이지만 그 울림은 하나로 공명한다. 글항아리·궁리 제공
사상가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을 창조한다. 반면 문학가는 그 세계의 그늘과 모순을 드러내 해체한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한동안 둘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옛 세계의 파괴와 새 세계의 창조라는 혁명의 시대인 20세기 둘의 ‘계약결혼’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렇게 빚어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환멸이 극에 달한 2차대전 이후 별거가 시작됐고 후기자본주의 시대를 맞으며 결별까지 운위되고 있다.

여기 그 둘의 분기와 해후를 동시에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중국 현대사상가 왕후이(汪暉·55)의 루쉰(魯迅·1881∼1936) 연구서 ‘절망에 반항하라’와 인디고연구소(잉크)의 지그문트 바우만(89) 인터뷰집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다.

‘아Q정전’의 작가로 유명한 루쉰은 다방면에서 활약한 ‘유기적 지식인’이지만 본질적으로 문학가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가 되기에 앞서 전통이란 이름의 우상을 파괴하고 과거의 적폐를 향해 비수를 꽂는 ‘분노의 복수자’가 되기를 꿈꿨다. 그래서 그의 필봉은 친구와 스승, 막 고인(故人)이 된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이는 서구의 과학기술혁명과 진화론을 중국 대륙에 심으려 했던 계몽주의자의 면모와 상충된다. 이성의 빛을 추구하는 자가 어찌 어둠에 침잠한 귀신의 형상으로 핏빛 복수에 집착할 수 있단 말인가.

왕후이는 자신의 사상적 출발점으로서 이런 루쉰의 모순성에 주목했다. 루쉰은 민족 해방에 헌신하면서 이런 민족은 멸망해야 한다고 저주를 퍼붓고, 사회주의에 상당히 경도됐지만 민주주의가 군중에 의한 통치라는 점에서 군주제보다 더 잔혹할 수 있다며 혁명운동의 효과에 대해서도 깊은 회의를 표명했다.

무릇 사상가라면 논리를 추구해야 한다. 루쉰은 그 논리 밖에 서 있다. 그러나 문학가라면 역설을 꿈꿔야 한다. 루쉰은 자신의 온 영혼을 쏟아 부어 그 분열적이고 비극적인 본능에 충실했다. ‘사적인 다툼에는 용감하고 공적인 복수에는 비겁한 중국인의 병적 상태’와 맞서 싸우기 위해 공적 복수의 화신이 되고자 했다.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고, 낡은 장부를 뒤적이는’ 절망적이고 어두운 경험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의 횃불을 들어 올리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루쉰이 절망에 맞서 영구 혁명을 꿈꾼 전사(戰士)라면 폴란드 유대계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바우만은 현대성이 초래한 비극적 상황에서 희망의 통찰을 길어내는 현자(賢者)다. 실존주의, 구조주의, 탈구조주의라는 사상의 격랑을 꿋꿋이 헤쳐 온 이 대기만성형의 노병에겐 문학적 역설을 사상적 논리로 빚어낼 줄 아는 연금술의 지혜가 있다.

그는 현대인이 겪고 있는 불안과 절망의 근원을 자유와 안전보장이란 개념쌍의 진자운동에서 찾아낸다. ‘자유 없는 안전보장’은 노예 상태를 뜻하고 ‘안전보장 없는 자유’는 혼란과 불안을 의미한다.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자본주의적 기획투사(project)는 한편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을 확대하고 다른 한편으론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다 못해 사생활의 전면 노출을 즐기는 병리현상을 초래한다.

여기에 ‘삶 자체를 하나의 기획으로 삼으라’는 근대의 정언명령은 구조적 불확실성과 심리적 불안을 초래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유동적 공포’를 안겨준다. 이는 완벽한 상태를 지향하던 ‘고체근대’가 50년 전부터 변화 그 자체를 지향하는 ‘액체근대’로 전환되면서 악화됐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라고 우리가 권한을 부여한 국민국가는 ‘얼굴을 갖지 않는 익명의 힘’(시장)에 농락당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이 지점에서 바우만은 역설적 희망을 말한다. 액체근대는 권력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지도자, 회사를 파산시키고도 거액의 퇴직금만 챙기는 기업 총수와 같은 책임의 유동을 낳는다. 하지만 그것을 기꺼이 짊어지려고 나서는 ‘힘없고 소외된 약자들’을 미래의 주체로 재탄생시킨다. 그들은 누구인가. ‘자기 결단을 무기 삼아 거대한 위험을 무릅쓰고자 하는 책임의 소명을 발명하는 사람’이다. 바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로지 개인의 독립성을 추구했던’ 미래의 루쉰들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절망에 반항하라#희망#살아있는 자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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