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외노조 전교조가 가야 할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0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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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판결에 의해 법외노조가 됐다. 당연히 전교조와 지지단체들은 '폭거'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자승자박한 전교조는 흥분할 자격이 없다. 전교조 내부에서조차 '예상대로'라는 표현을 쓰던데, 예상을 하고 있었다면 더더욱 흥분할 일이 아니다.

이번 판결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각에서 보면 의미가 더 또렷해진다. 과거의 시각에서 보면 지난 15년간 합법노조로 존재해온 전교조에 대한 냉혹한 평가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판결은 전교조의 활동내용이나 존재이유를 평가한 것이 아니라, 해직교사의 조합원 자격 여부를 따졌을 뿐이다. 하지만 구태여 법정까지 끌고 가지 않아도 될 일을 법정까지 끌고 온 전교조의 이번 투쟁 방식은 과거의 그것과 똑같은 행태이고, 그 행태에 대해 법원은 분명하게 '잘못됐다'고 판시했다.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전교조는 거의 모든 기득권을 빼앗기게 됨으로써 대단히 큰 곤경에 처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미 체결한 단체교섭은 효력이 사라지고, 단체교섭권을 잃었으며, 전임자는 모두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쓰고 있던 사무실도 내놓아야 하고, 지원금도 끊길 처지다. 이 때문에 전교조 조합원의 신규가입은 더 어려워지고, 기존 조합원도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조직의 존립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시각은 전교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전교조가 판결에 불복하겠다고 분명히 밝힌 이상, 교육계는 또다시 홍역을 치르게 될 것이다. 원치 않아도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이쯤에서 전교조도 투쟁방식에 대한 변화를 모색할 때가 됐다. 전교조는 현재 세 가지 점에서 착각을 하고 있다.

첫째, 법에 대한 오해다.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환영하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비판하는 태도는 이제 더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법은 전교조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애 같은 투정은 이제 그만뒀으면 한다.

둘째, 전교조가 예전만큼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전교조는 '참교육'의 깃발을 앞세워 무더기로 해직당할 때의 그 전교조가 아니다. 합법화된 이후 전교조는 전교조가 꼭 해야 할 일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에 매달려 왔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교조의 조직 자체를 위해 행동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셋째, 전교조에 대한 반대세력도 점점 커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전교조 초창기에는 대놓고 전교조를 반대하거나 비난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전교조에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몇 개나 태어났다. 이런 단체와 활동은 더 늘어날 것이다. 전교조의 방패가 돼 왔던 순수성과 도덕적 우위는 이제 전교조와도 거리가 멀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법원이 문제 삼은 해직교사들에 대해 참교육실천운동을 벌이다 해직된 사람들이라며 감싸고, 이번 판결은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 탄압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물타기로 납득하기 어렵다. 법원이 문제 삼은 해직교사 9명 중 적어도 6명은 아무리 좋게 봐도 참교육과는 관련이 없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전교조 돈을 교육감선거에 쓴 게 참교육과 무슨 상관이 있나.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탄압하고 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가 법원을 동원해서 유력노조의 생사여탈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평상시엔 정부의 지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골리앗 행세를 하다가, 피해를 볼 때만 마치 핍박받는 다윗으로 변신하는 행태가 너무 잦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이 나온 직후, 교육감 중의 교육감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 쪽이 내놓은 논평은 음미해볼 만하다. "조희연 당선인 쪽은 애초에 이 사안에 대한 판결이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하여 교육 본연의 문제에 집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였다. 조 당선인 쪽은 이번 판결 이후 우려가 현실화할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 아주 짧은데도 알 듯 모를 듯하다. 교육계에 혼란이 올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우려가 현실화하면 태도를 밝히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논평이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조 당선인 쪽이 전교조를 확실하게 두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 다른 진보 교육감들이 '법외노조가 불법노조는 아니니, 앞으로도 파트너로 인정하겠다'고 한 것보다 훨씬 신중하다. 조 당선인이 전교조에 등을 돌리겠다는 뜻은 아니겠지만, 이제 야인이 아닌 이상 신중하게 처신하겠다는 의미라면 존중할 만하다.

이번 6·4 지방선거를 통해 전국 17개시도 중 13개 시도에서 소위 진보교육감이 탄생했다. 이들은 누가 뭐래도 전교조의 최대 우군이다. 이번 판결이 몰고 올 '미래'가 혼란스럽다고 예견한 이유도 이들 교육감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예상이 단견이길 바란다.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이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교육감들은 법을 어겨가며 전교조를 도와서는 안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시키는 행위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교육감들이 공동보조를 취하거나 힘을 모아 세력과시를 하려 해서도 안 된다.

이번 판결은 1심이다. 항소심과 대법원 최종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때까지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항소심이나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혀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1심이 유지되든, 아니든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전교조는 정치투쟁이나 장외투쟁을 접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해직교사도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법 개정운동을 벌이는 게 순리다. 그게 전교조의 위상을 다시 살리는 지름길이다. 가라고 하는 길, 옳은 길을 놔두고, 자꾸만 가지 말라고 하는 길, 틀린 길을 고집한다면 전교조가 다시 법적지위를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상처는 더 깊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전교조에 중립적이었던 사람들도 전교조의 정체성과 존재가치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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