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對美수출기업 2만곳 중 절반 ‘위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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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불법SW 사용’ 소송… 외국 수출기업 옥죄기
新무역장벽 ‘불공정경쟁법’

매출액이 1000억 원 이상인 국내 유명 정보기술(IT) 중견기업 A사가 최근 미국에서 수십만 달러의 소송에 휘말릴 뻔하다 기소 직전 합의한 사실이 확인됐다. 혐의는 불법 소프트웨어(SW) 사용으로 인한 불공정경쟁법(UCA·Unfair Competition Act) 위반. A사는 불법 SW 사용을 중단하고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기로 약속하는 한편 SW 사용 현황을 정기적으로 미 연방검찰에 보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IT 업계 관계자는 “A사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유명 기업”이라며 “불법 SW 사용 사실이 알려질 경우 기업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서둘러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단속할 것”

미국이 자국 기업의 SW를 불법 사용하는 외국 수출기업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UCA가 입법돼 있는 곳이 워싱턴 캘리포니아 등 38개 주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혐의가 인정될 경우 최대 25만 달러의 벌금 외에 손해배상금을 추가로 내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서 불법 SW 사용으로 문제가 된 기업은 A사뿐만이 아니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에 따르면 최근 1년 반 동안 UCA 위반 혐의로 문제가 된 한국 기업은 4곳이다. 이들 기업은 모두 미 연방검찰의 경고장을 받고 기소 직전 저작권사와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SPC 오성택 실장은 “문제가 된 기업들은 모두 미국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견기업”이라며 “문제가 돼도 기업들이 쉬쉬하기 때문에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기업들이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UCA는 보호무역주의의 수단”

3월 미국 오클라호마 주 연방검찰은 중국 석유설비 회사 ‘뉴웨이 밸브’를 불법 SW 사용 혐의로 기소했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오클라호마 검찰총장은 기소 직후 “불법 SW 사용은 법을 준수하는 다른 경쟁업체를 상대로 부도덕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불법 SW 사용으로 생산단가를 절감하고 결과적으로 판매가를 낮춰 시장에서 이익을 얻는 행동이 불공정경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공정경쟁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값싼 외국 제품 때문에 미국 제조업이 위기에 빠졌고 실업률도 상승했다고 판단해 대미 수출기업들의 성장세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로 파악한다.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반(反) 해외 기업 정서와 함께 미 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특허권 침해 관련 소송에 적용하던 UCA를 대미 수출기업의 불법 SW 사용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 KOTRA, 수출기업에 주의 당부


SPC는 현재 한국의 대미 수출기업 2만여 곳 중 절반 가까이가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SPC 관계자는 “미국 6개 주에서 구체적 조치가 취해졌으며 앞으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한 번의 소송으로 경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어 해당 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위험성 파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삼성 등 국내 대기업들은 UCA 관련 법률 검토를 시작했으며 8월경 구체적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전해졌다. KOTRA도 지난달 ‘부품 및 완제품 대미 수출업체 사전적 대응 필요’라는 자료를 내고 대미 수출기업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법무법인 광장 최정환 변호사는 “UCA는 △벌금 외에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추가로 물릴 수 있고 △경쟁업체의 직접 고소가 가능하며 △불법 SW를 사용하는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협력사에도 책임을 묻는 연좌제 성격도 있어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선량한 공급자 먼저 돼 달라”

국내 IT 업계 관계자는 “불법 SW 사용이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미국 저작권사들이 사전 설명이나 고지를 충실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범법자 취급하는 것에 기업들이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SW 기업들이 불법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는 “미국 저작권사들은 컴퓨터 부팅 단계부터 인터넷주소(IP 주소) 및 SW 정보를 본사로 전송받고 있는데 한국에선 기기의 고유번호도 개인정보로 인정하는 판례가 있어 사법당국이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사이버범죄센터를 개설하고 300명의 직원을 고용해 국제적으로 불법 SW 사용을 모니터하고 있다.

:: 불공정경쟁법 (Unfair Competition Act) ::

불공정 경쟁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 최근 불법 소프트웨어(SW)를 사용하는 기업의 제품을 미국 내에서 판매할 수 없게 하는 데 적용되고 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미국#무역#불공정경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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