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담화 바꿔라”… 日 극우 삼총사 짜고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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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자료없다” 강변하며 위안부 문제 트집잡기 여론전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했다고 받아들여지는 ‘고노(河野) 담화’와 관련해 강제연행을 뒷받침할 공식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데다 옛 위안부에 대한 조사가 날림이라고 지적되고 있는데… 고노 담화를 수정해야 하나?”

일본 우익의 대변지로 통하는 산케이신문 25일자에 실린 여론조사 설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가 문제투성이라는 전제를 깐 유도 질문에 응답자의 58.6%는 ‘수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와 국회가 담화를 검증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66.3%가 ‘그렇다’고 답했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고노 담화를 흠집내고 수정하려는 여론 몰이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권의 각본에 따라 우익 신문 산케이신문과 극우 정당 일본유신회가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공모 아래 역할 분담을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 다수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외교가에서는 3월 24∼25일 네덜란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은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일본유신회 의원은 2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취조사를 재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검증 이유로 “고노 담화의 근거가 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증언이 대부분 엉터리였다”는 산케이신문 보도를 직접 거론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학술적인 관점에서 더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맞장구쳤다.

24일에는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섰다. 그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가 끝난 뒤 야마다 의원에게 “일부 언론 여론조사에서 고노 담화 수정 여론이 절반을 넘은 것은 (당신의) 질문 덕분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고노 담화 검증과 관련해 “시기를 놓치지 말고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격려했다.

이에 화답하듯 마쓰노 요리히사(松野賴久) 일본유신회 의원단 간사장은 25일 고노 담화를 검증할 기관을 국회에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관방장관이 다시 이어받았다. 스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국회 안에서의 일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언급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국회가 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뒤로 한발 빼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국회 차원의 고노 담화 검증을 사실상 용인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아베 정권의 이런 움직임은 고노 담화 수정을 목표로 본질을 흐리는 트집 잡기 전술로 보인다. 야마시타 요시키(山下芳生) 일본 공산당 서기국장은 25일 “(전쟁) 당시 문서는 전부 소각됐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며 “남아 있을 리 없는 것을 일부러 거론해 고노 담화 전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하는 객관적 증거와 증언은 수없이 많다. 미국 전시정보국 심리작전반 ‘일본인 포로 심문보고’ 49호는 “1942년 73명의 조선인 여성이 병원에 있는 ‘부상병을 돌본다’는 기망과 ‘편한 일’이라는 감언에 속아 수백 엔의 선금을 받고 버마에 이송돼 군의 규칙과 위안소 포주에 속박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야시 히로후미(林博史) 간토학원대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취업시켜 준다고 속여서 끌고 가 감금 상태에서 매춘을 강제했다면 강제 연행과 뭐가 다른가”라고 지적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는 25일 지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소는 일본군이 필요해 설치했고 정부도 관여해 만든 것이 틀림없다. ‘고노 담화는 근거가 없다’고 하는 것이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나”라고 비판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고노담화#일본#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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