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1000조 돌파 빨라도 너무 빨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9년만에 2배로 늘어 2013년 1021조원… 서민들 생계형 대출 급증

한국경제가 공식적으로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를 맞았다. 가계빚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통상 늘어나게 돼 있지만 문제는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데 있다. 특히 저소득·서민계층을 대상으로 한 고금리 대출이 급증하고 있어 이들의 파산 위험이 커지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1021조3000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57조5000억 원 늘었다. 가계신용은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은 물론 카드사의 판매신용까지 포괄한 개념으로 가계부채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가계부채 규모는 2004년 494조2000억 원이었지만 이후 가파르게 불어 9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4분기(10∼12월)에만 27조7000억 원 늘어 2002년 통계 작성 이후 분기 단위로 가장 많이 증가했다.

금융기관별로 보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저신용자가 몰리는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더 크게 늘었다. 지난해 시중은행을 포함한 예금은행의 대출 잔액은 전년도에 비해 3% 늘었지만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대출은 7% 급증했다. 특히 보험사 카드사 대부업체 등 기타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은 1년 전에 비해 12.1% 불었다. 이처럼 제2금융권 가계부채가 특히 많아진 것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서민들의 생계형 대출이 급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득 대비 빚 부담도 커지고 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4년만 해도 103%였지만 지난해 6월 현재 13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수입은 정체돼 있는데 빚 갚는 데 들어가는 돈은 많아지니 가계의 소비 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예전에는 부채가 늘어도 소득이나 자산가치가 같이 올라 괜찮았지만 최근에는 가계의 빚부담이 내수에 부담을 주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하우스푸어(내집빈곤층), 다중채무자, 자영업자 등 특정 계층은 소비 감소는 물론이고 빚의 연체나 파산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문제가 이처럼 심각해진 것은 역대 정권들의 ‘폭탄 돌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잇단 경제위기와 경기침체에 직면한 정부가 가계 건전성을 희생해가며 눈앞의 경기부양에 급급한 결과가 1000조 원대 빚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금리를 높여 빚이 더 늘어나는 것을 막자니 기존 대출자의 부담이 커지고, 금리를 낮추자니 가계빚을 더욱 조장하는 꼴이 돼 통화정책당국은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부양에만 신경을 쓴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를 외면하다 보니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며 “지금이라도 고소득자 중산층 서민 등 계층별로 대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부채도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5일 발표한 ‘국가부채의 재구성과 국제비교’ 보고서에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의 빚까지 포함해 국가부채를 재산정할 경우 나랏빚은 1218조400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공공부문 부채를 821조1000억 원으로 발표한 바 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장원재 기자
#가계빚#생계형 대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