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소설가들 ‘무기력한 공회전의 세계’ 비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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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 고개를 내민 1980년대생 소설가들은 내재된 이방인의 감각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소설 속에 되살려낸다는 평을 받는다. 이들이 그리는 세계는 뚜렷한 방향 없이 흘러간다. 왼쪽부터 소설가 박솔뫼 백수린 정용준 김엄지 손보미. 박재홍, 강재훈 사진작가·문학과지성사 제공·동아일보DB
한국 문단에 고개를 내민 1980년대생 소설가들은 내재된 이방인의 감각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소설 속에 되살려낸다는 평을 받는다. 이들이 그리는 세계는 뚜렷한 방향 없이 흘러간다. 왼쪽부터 소설가 박솔뫼 백수린 정용준 김엄지 손보미. 박재홍, 강재훈 사진작가·문학과지성사 제공·동아일보DB
1980년대생 소설가들이 문단에 속속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달에만 박솔뫼(1985년생)의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자음과모음)와 백수린(1982년생) 소설집 ‘폴링 인 폴’(문학동네), 정용준(1981년생) 장편 ‘바벨’(문학과지성사)이 나왔다. 손보미(1980년생)는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을 지난해 선보였으며 활발하게 단편소설을 발표하는 소설가 김엄지(1988년생)도 기대할 만한 신인이다.

2005년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로 단숨에 스타가 된 김애란(1980년생) 다음 세대인 이들은 김애란과 확연히 구분되는 스타일로 일군을 형성한다. 이들 ‘포스트 김애란’ 소설가 중 선두주자로 박솔뫼가 꼽힌다. 그는 독백으로 흐르는 듯한 문체, 전위적 서사로 낯선 소설을 쓴다는 평을 받는다. 김엄지는 박솔뫼와 비슷하면서도 인물의 캐릭터에 방점을 찍는다.

‘그럼 무얼 부르지’에 실린 박솔뫼 단편 ‘차가운 혀’에서 바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나’는 모든 질문에 “아니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한다. 단편 ‘안 해’에서 노래방에 감금됐다가 탈출한 ‘나’는 이렇게 결심한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으음 앞으로 뭐든 열심히 안 해야지. 아 잠만 열심히 자야지 열심히 안 해 아무것도. 지금까지 열심히 한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안 한다. 안 해 절대 안 해.” 김엄지의 단편 ‘영철이’에서 주인공 김영철은 뭐라고 묻건 간에 “글쎄, 그러게, 잘 모르겠는데”라고 한다.

내면의 결핍을 가진 이들 소설의 인물들은 무기력한 공회전의 세계를 맴돈다.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박솔뫼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를 ‘병맛세대’ 혹은 ‘잉여세대’라 여기며 모멸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젊은 세대들의 허무 감각이 돋보인다”면서 “박탈당한 기회, 단절된 소통, 공감의 지평을 알지 못하는 인간관계, 봉인된 희망으로 인해 요즘 청년세대들이 얼마나 고단한가를, 흐느적거리듯 중얼거리며 보여준다”고 말했다.

온전히 소통되지 않고 의미를 확보할 수 없는 현실은 80년대생 소설가들에게 언어를 다루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백수린의 단편 ‘폴링 인 폴’에는 재미교포 2세인 폴과 그의 한국어 교사가 등장하며 박솔뫼의 단편 ‘그럼 무얼 부르지’에서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모임과 교토의 바에서 우연히 ‘5월 광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는다. 정용진의 ‘바벨’에선 천재 과학자 노아가 말을 얼음으로 결정화하는 실험에 실패한 뒤 말이 만들어내는 부패한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말문을 닫고 살아가는 비참한 세계가 펼쳐진다.

문학평론가 박인성은 “80년대생 작가들은 스스로가 현실의 이방인이며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라고 여긴다”고 짚어냈다. 박솔뫼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5·18을 다른 세계로부터 지도를 짚어나가듯 찾아오며 백수린은 삶이 낯설어지는 순간을 소통의 코드로 그려낸다는 것이다.

80년대생 소설가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들의 소설은 실험적이고 감각의 저 끝까지 예민하게 파고든다는 점은 있지만 구체적 공간이 부재하고 소설적 언어가 선명하지 않아 ‘기호놀이’에 그친다는 지적이 있다. 책과 영화, 인터넷을 통한 간접 경험이 주를 이루는 ‘라이브러리 키드’로 소설에서 삶과 인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담긴 문학과 싸우기보다는 나가서 명동거리를 걸어야 한다”고 문학평론가 장은수는 조언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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