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실화를 씨줄로 설화를 날줄로… 혼돈의 세상서 길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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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김하기 지음/264쪽·1만3000원·해성

소설가 김하기(56)가 ‘복사꽃 그 자리’(문학동네) 이후 12년 만에 소설집을 내놨다. 비전향 장기수와 통일 문제를 주요 소재로 삼았던 초기작부터 사회의 모순 가운데 방황하는 주변인의 삶을 지나 작가의 최근 관심사인 실화와 설화를 뼈대로 삼은 작품까지 9편을 묶었다.

1996년 중국 옌볜 여행에서 취중에 두만강을 통해 입북해 물의를 빚었던 작가는 그 경험을 ‘우물가의 여인’에 담았다. 만취 상태였던 도강 전 기억의 공백을 채우고 싶었던 ‘나’는 어느 날 그날의 술자리에 있었다는 옌볜 조선족 여성작가 소만옥을 만나게 된다. 그의 말에 따라 ‘나’는 잃어버린 퍼즐을 맞춰간다.

당시 도강이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돼 ‘분단시대를 뛰어넘은 작가’, ‘어느 종북주의자의 말로’라는 반응을 불러왔지만, 송환돼 돌아오자 집에서는 그를 주정뱅이로 진단하고 알코올의존증을 치료하는 기관에 집어넣었다. ‘체류기간은 보름에 불과했지만 내가 상상하던 곳이 아닌 데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작가의 눈에는 폐쇄적인 은둔의 왕국으로 비쳤다. 도강 이전에는 이념적인 글들을 쓰기도 했지만 도강 이후 이데올로기가 피곤하게 느껴지면서 역사소설을 주로 썼다.’

‘아덴만의 여명’에서는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를 소설 속으로 끌고 왔다. 표면에 드러난 사실의 이면에서는 비밀스러운 일이 일어날 거라고 대중은 믿는다. 작가의 상상력은 그 지점을 파고든다. 해적들이 배를 납치한 진짜 이유는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살해 위협을 피해 홍콩에서 승선한 남한의 핵물리학자 김장호 때문이었다는 것. 선원 21명은 전원 풀려났지만 존재가 감춰진 ‘22번째 선원’ 김장호는 해적들의 은신처에서 북한 특수요원과 마주하게 된다.

제자들에게 영어 실력을 지적당하는 나이든 영어 교사(‘스승’), 대입 면접날 아들이 가출했다는 전화를 받은 이혼남(‘조용동시’), 상수원 보호구역에 호텔을 짓게 허가해 주라는 외압에 갈등하는 구청 공무원(‘계단에 앉아서’), 수몰을 앞둔 마을에서 실성해버린 뒤 사라진 소녀(‘달집’)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헤매는 우리 자신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김하기#달집#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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